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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품위란 것도 모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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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주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의 ‘매카시즘’ 전횡과 경위를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전후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적 공포감을 악용, 공산주의자들의 마수가 의회와 정부 요직에까지 깊이 침투했다고 주장하며, 위기의식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활용했다. 상원 조사위원회를 너무 빈번히, 자의적으로 소집해 1953년 중반 이후에는 일부 민주당 의원이 ‘빨갱이 누명’ 위험까지 무릅쓰고 사임했고, 공화당 의원들조차 회의 일정을 맞추지 못해 참석하지 못하는 예가 빈번했다. 매카시는 사실상 혼자, 또는 소수 추종자들과 함께 청문회 증인들을 추궁하고 판단하고 심판했다. 하버드 법대 학장이던 어빈 그리스월드의 말, “매카시는 판사와 배심원 검사 교수형 집행인 언론인의 역할을 혼자 도맡아 했다”는 진단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매카시에게, TV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정적인 한방을 날린 이가 있었다. 미 육군 변호사 조지프 웰치(Joseph Welch)였다. 1954년 봄 매카시는 군사기밀에 대한 보안을 트집 잡아 미 육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TV와 라디오로 중계된 이른바 육군-매카시 청문회였다.
1954년 6월 9일, 매카시는 늘 그랬듯 근거 없이 웰치의 젊은 변호사 중 한 명이 공산주의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했다. 기가 막힌 웰치는 이렇게 반박했다. “의원님, 지금 이 순간까지 저는 당신의 잔인함과 무모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이 청년을 더 이상 저격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당신은 할 만큼 했소. 품위란 것도 모릅니까?(Have you no sense of decency?)”
매카시의 ‘고발’의 내용 문제를 고발자의 인격과 품위의 문제로 전환해버린 그의 한마디로 매카시는 거의 패닉에 빠졌고, 훗날 일부 언론은 그 사건으로 매카시의 전국적 인기가 순식간에 증발했다고 평했다. 매카시는 그해 12월 상원 불신임 투표로 공식적으로 실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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