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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아닌 말로써 미국의 심장을 움켜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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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평원 인디언 전쟁과 남북전쟁에서 명성을 떨친 필립 세리던(Philip Sheridan, 1831~1888) 장군이 했다는,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라는 말은, 스스로도 부정했고 근거도 불분명하지만, 당대 미국인들의 원주민에 대한 반감을 대변하며 정설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미국인들이 추앙하는 인디언 대다수는 백인 선조들의 오금을 저리게 한 전사들, 쉽사리 죽지 않은 인디언들이다.
워싱턴주 블레이크 섬 인근 지역 두와미시족과 수콰미시족의 추장 시애틀(Seattle, 원표기는 SI'AHL, 1786?~1866.6.7)은 도끼가 아닌 말(言)로써 미국인들을 사로잡은 드문 인물이다. 백인 초기 정착민들이 대륙 서북단까지 세력을 확장해 가던 무렵, 어로와 수렵으로 생활하던 그의 부족은 호전적인 이웃 부족들과의 전투에서 점차 밀리던 형국이었다. 시애틀 추장은 백인들의 도움으로 부족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했고, 보호구역 정책에도 대체로 순응했다.
1854년 워싱턴 준주 주지사 아이작 스티븐스(1818~1862)가 부임했다. 환영단의 일원으로 그를 맞이한 추장은 (초기 정착민 의사 헨리 스미스의 전언에 따르면) 스티븐스의 머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엄숙한 어조로, 100년 뒤 세상을 뭉클하게 만든 긴 연설을 시작했다. 원주민에게 땅과 조상이 어떤 의미인지, 터전과 전통이 또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스미스는 연설을 메모했다가 1887년 지역 신문 '시애틀 선데이 스타'에 기고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백인 사회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이었다.
진위 논란이 시작됐다. 스미스가 연방 간섭에 맞서 초기 정착민의 권리를 부각하기 위해 30여 년 전 추장의 연설을 왜곡해 이용했다는 주장, 추장의 언어라 믿기 힘들 만큼 현란한, 빅토리아풍 화법이라는 지적. 그 글은 지역사를 비롯, 여러 매체와 책에 거칠게 인용되면서 또 고쳐지고, 1970년대 환경-인권운동 진영에 의해 또 수정-가필되면서, 그의 연설은 전설이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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