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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을 300명 늘릴 때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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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몇 해 전 복지∙의료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을 맡고 있을 때다. 한 의사회 임원진이 우르르 회사를 찾았다. 동네병원들의 과잉 진료를 지적하는 기사에 담긴 사례가 가짜 뉴스라며 다짜고짜 격분했다. 어떤 내용이 허위라는 건지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당장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겁박했다. 그들은 소송까지 냈고, 법원은 기각했다.
의사 카르텔의 무소불위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막강하다. 간호법을 폐기시킨 건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아닌 의사들일 것이다. 지역돌봄 수요 증가라는 간호환경 변화는 그들의 밥그릇 사수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3년간 별 탈 없이 3,600만 건 넘게 진행된 비대면 진료는 의사들의 강력한 로비로 우스꽝스럽게도 다시 시범사업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초진이 아닌 재진으로 범위를 좁혔다. 진료를 보조하는 PA 간호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의사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합법화에는 결사 반대한다. 간호사들의 준법투쟁이라는 형용모순은 그래서 성립한다.
18년째 묶어둔 의대 정원(3,058명)은 의사 권력의 결정판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의사들을 달래려고 단계적으로 10% 줄인 정원은 지금껏 요지부동이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하겠느냐”(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센터장)는 일갈이 현실임에도 그렇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10년 한시 400명 증원을 밀어붙였지만 전공의까지 가세한 총파업에 백기를 들었다.
정부는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한다. 내년 초까지 증원 계획을 확정해 2025학년부터 적용하겠단다. 제법 의지도 있어 보인다. 8일에는 의사협회와 테이블에 앉아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증원 문제를 논의한다. 몇 명을 증원할 거라는 예측 보도도 쏟아진다.
그런데 걱정이 된다. 지금 자녀의 의대 진학을 오매불망 바라는 학부모들은 가슴 졸이며 정부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좁디좁은 바늘구멍이 조금이나마 넓어질 테니 당연하다. 서울대 합격을 포기하고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선택하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헝가리, 우즈베키스탄을 넘어 일본 의대까지 ‘닥터 로드’를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형국이다.
장담하건대, 정원 확대는 의대 열풍에 기름을 부을 것이다. 서울대 합격 포기가 늘어날 것이고, 해외 의대에서 국내로 유턴할 것이고, 성적이 못 미쳐 의대 진학을 포기했던 학생들도 다시 욕심을 내볼 것이다.
이게 한두 해에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 현장 의사가 늘어야 권력이 줄어들 텐데, 아직 먼 얘기다. 의대에 입학해서 전문의 자격을 따기까지 족히 10년 이상이 걸린다. 내후년 입시부터 지원이 늘어난다 쳐도 실제 의사 증원은 2035년 이후라는 얘기다.
의대 열풍이 조금이라도 꺾이려면 결국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가도 미래에는 안정적인 돈벌이가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인력 공급이 확 늘어야 한다. 그래야 힘들고 돈이 안 돼 기피한다는 필수의료에까지 인력이 흘러갈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350명, 많아도 500명 정도 증원을 카드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응급실 의사가 없어 뺑뺑이를 돌다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잇따르고, 국내 1호 어린이병원마저 휴일 진료를 중단하고, 연봉 10억 원을 제시해도 필수진료과 의사를 뽑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원래 협상 테이블에선 일단 크게 지르고 보는 법이다. 상대가 강할 땐 더더욱 그렇다. 지금 정부가 준비하는 카드를 모두 관철시켜도 부족하지만 협상에서 밀려 소폭 증원에 그치고 말 공산이 더 크다. 전문가들은 1,000명, 2,000명 증원 필요성을 얘기하는 판이다. 필수의료 인력난은 해결도 못한 채 의대 열풍만 키우는 찔끔 증원이라면, 아무리 18년 묵은 숙제를 푸는 첫걸음이라도 나는 박수를 쳐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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