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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블랙 월스트리트'

입력
2023.05.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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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털사 흑인 학살

1921년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 '그린우드 학살' 당시 모습. University of Tulsa

1921년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 '그린우드 학살' 당시 모습. University of Tulsa

미국 흑인 인종폭동 사례는 빈번히 언급되지만, 1921년 5월 31일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빚어진 백인 폭동, 엄밀히 말하자면 흑인 집단 학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흑인 거주지구 그린우드(Greenwood)에 대한 백인들의, 군사적 침략을 방불케 한 파괴· 방화와 300여 명의 무차별 살육.

그린우드 지구는 미 연방 원주민 토지분배 정책에 따라 원주민지구로 조성됐지만,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은 분리-차별을 피해 그린우드에 잇달아 정착해 이내 흑인 경제활동의 거점이자 일종의 해방구로 만들어갔다. 1910년대 말 그린우드 인구는 약 1만여 명. 학교는 물론이고 근사한 호텔과 병원, 고급 보석 의류 상점, 극장, 레스토랑, 식료품점, 미용실, 도서관과 신문사까지 갖춘 흑인들의 ‘블랙 월스트리트’로 성장했다.
KKK 등 백인 우월주의자, 가난한 백인들은 그린우드 흑인들이 누리는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질투하며 툭하면 린치를 가하곤 했다. 경찰력과 사법 권력은 물론 백인 전유물이었다. 1차대전 베테랑 등 일부 흑인들이 무기를 들고 백인들의 린치에 대응했지만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소수였다.

1921년 5월 30일, 만 19세 흑인 구두닦이 청년 딕 롤런드(Dick Rowland)가 털사 다운타운 한 빌딩에서 백인 여성 승강기 오퍼레이터의 발을 밟는 실수를 저질렀다. 여성은 비명을 질렀고, 놀란 롤런드는 도망쳤다가 다음 날 체포됐다. 백인 신문들은 그를 ‘강간 미수범’으로 보도했다.

그린우드에 대한 백인들의 ‘약탈’이 그렇게 시작됐다. 주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방위군을 투입하기까지 약 24시간 동안 1,200여 채의 집과 상점이 파괴됐고, 300여 명이 숨졌다. 일부 백인은 경비행기로 기름 폭탄까지 투하했다고 당시 흑인들은 증언했다. 오클라호마 주정부의 공식 조사는 70년이 지난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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