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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스킹의 시대, 이젠 중국에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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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39.0%(22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로 취임 후 처음으로 4주 연속 상승했다. 돈 봉투 의혹과 코인 논란의 늪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이 중도층을 잃어가면서 벌어진 탓도 무시할 수 없지만, 한일관계의 숨통을 트고 워싱턴선언으로 동맹의 안보협력 수위를 끌어올렸다는 실적이 빚어낸 결과다. 3월 16일 윤 대통령의 방일로 시작된 '외교 슈퍼 분기'가 22일 유럽연합(EU) 지도부 방한으로 쉼표를 찍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보람됐다(23일 국무회의)"라고 평할 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외교당국이 더 이상의 자찬과 만족감을 누릴 여유는 없다. 이유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뉴욕타임스 표현에 따르면 최근 국제 외교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fashionable terms)는 '디리스킹(De-risking)'이다. 이는 경쟁 혹은 적대세력과의 무작정 '관계 단절'을 뜻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대신하는 추세이며, 위험요소를 최대한 완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3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한 연설에서 처음 주목받은 표현으로, 올봄 윤 대통령의 동맹외교 몰입기 동안 EU는 물론 미국·G7 정상회의의 공통된 대중 관계 열쇳말로 떠올랐다. 문제는 그동안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들어서는 것처럼 비쳤던 윤석열 정부가 우방들과 발맞춰 대중국 디리스킹으로의 선회를 제대로 해낼 것인지이다.
디리스킹은 위험회피를 위해 갈등을 외면하는 소극적인 외교행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중국 등의 강압적인 정책, 예를 들어 요소수 수출규제, 한한령 등에 굴하지 않을 힘을 기르는 장기적인 체질개선에 가깝다고 해석된다. 디커플링이 상처를 덮은 반창고를 막무가내로 뜯어내기라면, 디리스킹은 상처가 덧날 위험요소를 사전에 최소화하고 새살이 자리 잡는 목표에 집중하는 보다 유효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G7 정상회의를 잘 마무리하며 G8에 더 다가간 우리를 향해 중국이 던지는 질문은 억세지고, 선택을 요구하는 자세는 날카로워졌다. 당장 격화하는 진영 간 '반도체 전쟁' 와중에 중국은 미 마이크론을 제재하면서 결과적으로 자국 내 공장을 두고 있는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난관으로 몰아붙였다. 한한령 시행과 종료 그 어느 것도 확인해주지 않았던 중국은 얼마 전부터 네이버 등 우리 포털사이트 접속을 끊고, 입국한 연예인 출연마저 막아섰다. 중국은 여름내 백악관에서 이뤄질 한미일 정상회담, 9월 유엔총회 등에서 서구진영과 한층 더 밀착할 한국을 여러모로 앞서 견제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우리 당국은 중국이 사드 사태 때와 같이 한국 경제를 크게 흔들 명분도 카드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우리의 대중관계가 전략이 안 보이는 무작정 디커플링에 머문다면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대중관계를 순조롭게 디리스킹하는 힌트와 그럴듯한 사례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저녁나절 남산에 올라보면 동남아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돌아오지 않는 유커들에 집착하지 않고 대신 1년 새 100배 이상 급증한 동남아 입국자들의 취향을 읽어 서울의 자연과 야경을 상품으로 엮어낸 우리 여행사들의 성과다. 중국의 어떤 압박에도, 기민하게 새 시장을 개척하고, 지혜롭게 위험요소를 하나둘 줄여나가는 현명한 디리스킹. 우리에게도 이런 실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중국에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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