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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의 육참골단?... 러의 '바흐무트 점령'에도 전쟁 판도는 '시계제로'

입력
2023.05.22 21:00
수정
2023.05.22 21:06

우크라, 바흐무트 '전략적 포위' 방식으로 변화
러시아 병력 분산 여부 따라 전황 바뀔 가능성↑
러시아군 방어진지 구축·전투 진화도 이어져

우크라이나군 80공습여단이 16일 바흐무트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군 80공습여단이 16일 바흐무트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바흐무트가 러시아의 '점령 선언' 이후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전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우선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바흐무트를 함락했다는 건 기정사실로 보인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군이 '전략적 포위'라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러시아로선 오히려 바흐무트 사수를 위해 새로운 전투를 이어 가야 할 판이다.

특히 '신규 점령지' 바흐무트에 러시아가 지원군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이번 전쟁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불안정하게나마 한동안 고착돼 있던 전체 전선이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이라는 변수로 곳곳에서 균열이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영국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바흐무트는 여전히 전투의 진앙"이라고 표현했다.

반타원형으로 러시아군 진격 막아선 우크라군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 '바흐무트' 지역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 '바흐무트' 지역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우선 국지전 측면에서 러시아군의 '바흐무트 점령' 발표는 "끝이 아닌 시작에 가깝다"는 게 서방 군사전문가들의 평가다. 21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사실상 바흐무트를 장악한 이후에도 그 외곽에서 지속적 공세를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전략적 목표가 '바흐무트를 뺏기지 않는다'가 아니라, '바흐무트를 지나 돈바스 동부로 러시아군을 진격시키지 않는다'였던 만큼, 오히려 바흐무트 외곽을 반타원형으로 포위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전략적 포위'는 바흐무트 남부와 북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부장관은 이날 NYT 인터뷰에서 "지난 6일 바흐무트 남부 이바노브스키 마을을 되찾았고, 최근에도 외곽의 고지대를 차례대로 탈환하고 있다"며 "우리의 (포위) 전략은 바흐무트에 있는 적을 더 복잡한 상태로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 입장에서 '폭탄'과도 같은 위험 요인은 또 있다.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다. 바흐무트 전투를 해 온 러시아의 주력은 정규군이 아니라 바그너그룹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바흐무트 점령을 발표했던 지난 20일,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은 25일 동부전선(바흐무트)을 떠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실제로 바그너그룹이 바흐무트에서 일제히 철수할지, 러시아가 곧바로 정규군을 투입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바흐무트 장악과 관련한 러시아 매체 보도에서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에서든 '프리고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러시아 정부와 프리고진이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로 바흐무트 공방전이 지속될 동안, 그는 러시아 정부의 무기 등 지원 부족에 공개 불만을 터뜨리면서 '철수 방침'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러시아의 바흐무트 사수에 있어 돌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력 교체 시 대규모 전투?... 러, '전력 분배' 고민

21일 우크라이나 전차가 바흐무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1일 우크라이나 전차가 바흐무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바흐무트 주둔 러시아군 병력 교체도 주목할 변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복수의 우크라이나군 관계자 발언을 인용,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대규모 전투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정규군이 진지 등에서 인수인계를 받는 취약한 시점에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된다는 이유다.

러시아군이 병력 교체에 성공해도 숙제는 남는다. 바흐무트에 인원을 보충할수록, 다른 전선에선 그만큼 전력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를 노리고 곳곳에서 선제 공격을 가할 가능성도 크다.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남부 헤르손에 주둔 중인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드니프로강 건너편의 러시아 진지를 겨냥한 포격을 늘리며 도강 훈련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바흐무트 점령이 사실은 우크라이나군의 계산된 책략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AP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계속 바흐무트에 할당하도록 압박을 받는다"며 "이는 우크라이나군 지휘부가 의도했던 것"이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살'(바흐무트)을 베어내 주고, 러시아의 '뼈'(병력 혼란)를 절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전략을 썼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간은 우크라편?... 러시아군도 '진화 중'

우크라이나 남부 톡막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3중 방어선 모습. 영국 BBC방송은 최근 위성 사진들을 분석해 21일 이같이 보도했다.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남부 톡막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3중 방어선 모습. 영국 BBC방송은 최근 위성 사진들을 분석해 21일 이같이 보도했다.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분석은 대부분 친(親)우크라이나 성향인 서방 군사전문가들이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황이 러시아에 마냥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에도 불구, 이곳에서 양측 교전이 이어지겠지만 시간의 흐름이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만 유리하진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10개월간 바흐무트 공방전이 이어질 동안, 1,500㎞에 달하는 대치 전선의 핵심 방어선을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 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영국 BBC방송은 최근 위성 사진들을 분석한 결과라며 "러시아군이 최근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톡막(Tokmak) 지역 등 요충지 3곳에 3중 방어선을 만들고, 전방위 대전차 공격이 가능한 원형 참호까지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전쟁 초기 무기력하고 허둥대는 모습마저 보였던 러시아군의 전투 능력이 향상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확보한 영국 싱크탱크 '왕립서비스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연이은 육지 전투 패배에서 교훈을 얻은 듯 대대급 보병의 기본 전투 방식을 변환했다. 종전엔 '포병의 엄호'뿐이었으나, 이제는 더 작은 단위의 부대를 '장갑차와 방공 장비가 엄호하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군의 야간 작전 및 진지 점령 능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 장갑부대와 전자전 부대의 작전 운용 능력도 동시에 진화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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