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련한 대중 발언의 허전함

입력
2023.05.17 16:02
수정
2023.05.17 16: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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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한 비호·무례에 맞대응
정서적 쾌감 줄지라도 실익 적어
갈등 완화·국익 증진 외교술 기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중국에 서운하지 않을 리 없다. 북한이 목전에서 핵·미사일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버티고 앉아 대북 추가 제재를 번번이 가로막고 있다. 첫 핵실험을 감행한 2006년 이래 안보리에서만 13차례 제재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지금도 핵무장에 매달릴 수 있는 건 중국의 물밑 지원 덕분이다.

북한의 횡포를 감싸는 것도 못마땅한데 우리를 무례하고 고압적으로 대하는 일도 잦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의 레버리지(영향력)를 기대하며 '망루 외교' 부담까지 감수했지만, 중국은 이후 북한의 4~6차 핵실험을 방관했고 되레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를 문제 삼아 한국에 수년간 경제제재를 가했다. 후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기간 '혼밥' 논란도 한국 홀대로 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워싱턴 선언에 대한 중국의 비판에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라며 맞받았을 때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국민이 많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한테 이의를 제기하려면 (북한) 핵 위협을 줄여주든가 적어도 안보리 제재, 국제법은 지켜줘야 한다"며 중국에 노골적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달 국빈 방미 직전 윤 대통령과 외교당국이 대만 문제에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도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에게 중국 외교부가 "말참견하지 말라"며 무례하게 나오자, 우리 외교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 "국격을 의심케 한다"고 맹비난하며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하지만 당장의 후련함은 있을지라도 이런 직설적 대중 메시지가 국익에도 보탬이 될지는 의문이다. 미국에 공들인 만큼 북핵 억제 강화책을 얻어냈는지, 한미를 넘어 한미일 군사 공조까지 이렇게 서둘러도 되는지 논란은 있지만, 실존적 북핵 위기에 맞서 동맹·우방과 손잡고 대북 대응 태세를 긴급 강화한 정부 선택은 불가피했다. 다만 외교는 군사안보 영역과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한다. 양자의 보완관계를 감안한다면 지금의 대중 외교는 갈등 고조가 아닌 완화를 향해야 옳다.

외교는 말로써 상대방을 움직일 레버리지를 창출하는 영역이다. 중국의 대북 제재 훼방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만은 기자들이 전하는 '격정 토로'가 아니라, 양국 현안 등을 지렛대 삼아 제재 동참을 촉구하는 형식이라야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타협 불가의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가 윤 대통령의 대중 메시지로 부각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물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는 국제 규범에 부합하는 명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를 미국 주도 반중 연대의 '구호'쯤으로 여기는 중국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건 감정적 반발뿐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은 미국 제조업 강화와 일자리를 위한 것으로 중국에 상처를 입히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 지장을 걱정하는 질문에 중국을 달래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다음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지만 대립이나 갈등을 바라진 않는다"며 "(대중) 수출통제는 군사적 균형을 해칠 수 있는 기술에 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신냉전'이 거론되는 극한 대립에도 경쟁과 공존의 공간을 세심히 구획해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말의 힘'이 새삼 감탄스럽다. 중국 성토의 장이 될 법한 이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19~21일)에서 윤 대통령이 발휘해야 할 외교술이기도 하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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