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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 좋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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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시장 경쟁을 중시하는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자유시장경제' 대신 자본주의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쓰는 이유는 그만큼 자본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경쟁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자본이 유통되는 자본시장 또는 금융시장은 완전한 자율이나 경쟁과 거리가 멀다. 우선 자본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투자한 돈에 대한 원금이나 수익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면 국가 공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금융산업은 출발부터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왔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프랑스와의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아 탄생했고, 다른 나라 정부들도 은행사업 인허가권을 볼모로 다양하게 은행들을 규제하고 이용해 왔다. 현재까지도 각국 정부는 이자율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융 위기나 코로나 등으로 경제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금융시장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경쟁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 무능한 기업이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후생이 증가하고 경제적 효율성도 제고되는데, 자본시장은 이런 메커니즘을 무제한 적용할 수가 없다. 은행 산업의 예를 들면, 은행이 망해서 파산하게 되면 은행보다 일반 예금주들이 더 큰 손해를 보게 되고 일부 은행들의 파산으로 금융권 전반에 불안감이 퍼지면 뱅크런이 발생해 전체 금융시스템이 위협받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예금을 다 보장해 줄 수도 없다. 경쟁력 없는 은행들이 높은 이자로 예금을 끌어모아 투기적 사업에 집중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은행이 좀비처럼 영업을 계속하며 손실을 키우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정부는 금융시장을 자유방임과 무한 경쟁에 내맡길 수 없다. 최근 깡통전세 사태는 금융의 이런 단면을 잘 보여준다.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형태의 금융거래이다.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해당 주택에 대한 담보권과 거주권을 갖는다. 전세가율이 급등하면서 다수의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모아 대규모로 투자사업을 하는 신종 임대사업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최소자본으로 부동산 갭투자에 올인했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그 손실을 임차인들에게 고스란히 떠안기게 된 것이다. 이런 사업 형태를 금융업으로 인지하지 못한 당국은 사전에 예방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대규모 손실이 이미 실현돼버린 상황에서 사후수습에 고심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금융시장이 발전하기 위해 유능한 정부와 선진적 정치가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전세 사태에서처럼 너무 허술하거나 느슨한 규제는 금융사기나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고, 반면에 너무 엄격한 규제는 금융시장의 경쟁과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정부가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정치적 위력을 이용해 자의적으로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인데, 공개적인 의견수렴이나 검증 절차가 없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쉽고 심지어 부당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인 자본시장의 성패는 결국 정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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