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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안 이어진 '총성 없는 세계대전'... 반도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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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파괴력이 큰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같이 실제적인 무력 충돌일까. 아니다. 정답은 아마도 '반도체 전쟁'일 것이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었던 물질, 반도체. 어떻게 스마트폰 같은 가전기기부터 통신 기술, 인공지능, 군사력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게임체인저로 부상했을까.
반도체의 탄생에서부터 산업화, 생산 공정의 세계화, 그리고 오늘날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의 알력 다툼까지. 가히 반도체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 '칩워'가 국내 출간됐다. 책이 번역되기 전부터 원서로 내용을 접한 금태섭 전 의원 등 여러 인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추천한 화제작.
반도체 전문가가 아닌 역사학자가 썼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반도체의 역사를 개괄하는 만큼 'D램'이니 '낸드'니 하는 첨단 기술 용어가 가득해 읽기 난해하지 않을까. 걱정 마시라. 이 책은 반도체를 둘러싼 한 편의 대서사시이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총성 없이 확전하고 있는 전쟁 스릴러물이다.
반도체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윌리엄 쇼클리는 전기 흐름을 발생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반도체 현상을 최초로 이론화한 인물. 이윽고 1948년 반도체성 물질로 이뤄진 새로운 형태의 트랜지스터(아주 작은 전자 스위치) 개념을 창안해 낸다. 향후 이 트랜지스터는 수십억 개가 모여 인간 두뇌가 수행하는 수준의 업무를 하게 되는 첨단 기술의 초석이 됐지만, 기술의 파급력을 점칠 수 없었던 당시에는 뉴욕타임스 46면에 겨우 실릴 정도로 과소평가됐다.
1960년대에 들어 새로운 기술은 군사산업과 결합한다. 1960년 소련이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가 미국인의 위기감을 자극했다. 초창기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회사들은 항공기에서 탄약, 라디오에서 레이더까지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수 업체와 미군에 판매하면서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 이후 시장화의 길을 걸으며 가정용 컴퓨터의 보급과 지금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항공우주와 군사 영역을 넘어 반도체가 경제와 일상생활까지 지배하게 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반도체' 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국인이 많겠지만, 대만의 TSMC는 세계 시장의 6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는 1위 파운드리(반도체 설계가 아닌 제조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 업체.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도체 신화'는 1980년대쯤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기술력을 신뢰할 수 있는 데다가 저렴하기까지 한 생산 기지가 필요했고 반도체 주도권을 호시탐탐 누리는 일본의 대항마를 찾던 미국과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국내에 일자리를 제공하며,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동아시아 신흥 국가들의 이해가 일치했다. 이제 반도체는 어느 한 나라가 만들어내는 완성품이 아닌,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다 함께 만들어내는 글로벌 공급망의 결과물이다.
명실공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에 돌입한 지금, 전쟁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으로 확전한다. 2019년부터 미국은 국가 안보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등 중국 주요 기업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막고 있다. 경제적 진보를 해외 기술에 심각하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60여 년 전 '스푸트니크호 발사'를 목도했을 때만큼의 충격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운을 걸고 '반도체 굴기'에 나선 까닭이다.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그래서 언제 10만 전자(삼성전자 주식 1주 가격이 10만 원에 이르는 일) 가는 거야?' 같은 질문의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한국 정부가 반도체클러스터 계획을 발표하면서까지 특정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지, 중국의 대만 침공설은 왜 갑자기 현실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지, 미국의 반도체법·인플레감축법(IRA)에 한국 기업이 휘청이는지 반도체를 둘러싼 오늘날 국제정치학적 맥락과 전략적 중요성을 거시적·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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