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반격 서막? 러시아 자작극?… 푸틴 안마당에 날아든 드론에 전운 고조

입력
2023.05.04 21:00
수정
2023.05.05 10:59
13면
구독

크렘린궁 "우크라·미국, 푸틴 암살 시도한 것"
우크라 "보복 명분 쌓으려 러가 꾸민 일" 반박
러, 대대적 공습... "키이우 올해 최대 공격 받아"
"우크라의 심리전" "러의 위장 전술" 추측 무성

3일 새벽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상공으로 드론 폭발로 인한 화염이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해하고자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크렘린궁 주변 CCTV 영상 캡처. 모스크바=UPI 연합뉴스

3일 새벽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상공으로 드론 폭발로 인한 화염이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해하고자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크렘린궁 주변 CCTV 영상 캡처. 모스크바=UPI 연합뉴스

봄철 대반격의 서막일까, 보복을 정당화하려는 자작극일까. 3일 새벽(현지시간) 러시아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 관저)에 대한 드론(무인기) 공격 시도를 두고 온갖 관측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운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크렘린궁을 직접 겨냥한 공격이 이뤄진 건 처음이다.

배후는 불분명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며 격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고 반박했다. 어느 쪽이든, 군사적 긴장감은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면 '5월 대반격설'의 예고편일 수 있고, 러시아가 꾸민 일이라면 보복을 명분으로 대공세에 나설 게 뻔하다.

15분 간격으로 '펑'… 러시아 "푸틴 암살 미수"

타스·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크렘린궁은 3일 성명을 통해 "오늘 새벽 우크라이나가 크렘린궁으로 드론 두 대를 날려 푸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다만 드론들은 자체 방공망을 통해 모두 격추됐으며, 인명피해는 없다고 덧붙였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외곽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내부에서 발생한 이전 공격에 대해선 거의 공개하지 안 했던 데에 비해, 다섯 단락의 성명이 발표된 건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NYT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드론 두 대가 15분 간격으로 크렘린궁을 향해 날아든 뒤 불길을 내뿜으며 폭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는 형법 205조(테러 행위)를 적용해 공식 수사에 착수했다. 모스크바가 적의 폭격을 받은 건 1942년이 마지막이었다.

이튿날엔 사건 배후로 미국까지 끌어들였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4일 "이런 테러 행위에 대한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이 내리는 걸 알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실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헬싱키=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헬싱키=AFP 연합뉴스


우크라, 배후설 부인... 러 '핵무기 사용' 목소리도

우크라이나는 배후설을 즉각 부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핀란드 헬싱키 방문 중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리 영토에서만 싸운다. 러시아가 국민들의 전의를 높이고자 이런 일을 꾸며낸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공세를 펴기 전, 보복의 명분을 쌓는 것이라는 의심이다.

실제 러시아는 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 전국 주요 지역에서 대대적 공습을 가했다. 키이우 군정 수장은 "오늘 키이우에 대한 공격 강도가 올해 들어 가장 강력했다"고 말했다. 앞서 크렘린궁은 성명에서도 "러시아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언제 어디서나 대응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며 보복을 예고했다.

특히 러시아는 잔뜩 칼을 갈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물리적으로 제거하자"고 말했다. 러시아 하원의장도 "우크라이나 테러 정권을 파괴할 능력이 있는 무기를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핵무기 사용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빅토르 토멘코 알타이 지방지사와의 영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빅토르 토멘코 알타이 지방지사와의 영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우크라, 러에 모욕 줬다" vs "러의 성명 발표도 수상"

국제사회 및 전문가들 판단은 엇갈린다. 우크라이나의 관여를 의심하는 쪽에선 최근 러시아 내 유류저장고, 열차 등 기반시설 공격의 연장선에 크렘린궁 드론 공격이 있다고 본다. 5월 9일 전승절 전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불안과 분열을 조성하려는 '심리전'일 수도 있다. NYT는 "크렘린궁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인식시키려는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전문가 발언을 전했다. 푸틴 대통령 머리 위로 드론이 날아든 것 자체가 러시아엔 모욕이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는 국경에서 직선거리로 450㎞ 이상 떨어진 크렘린궁을 공격할 능력 자체는 갖추고 있다.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공격을 받았을 때와는 달리, 장문의 성명 발표로 '크렘린궁이 공격받았다'는 걸 떠들썩하게 알린 점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소행이라는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현직 미국 당국자들은 NYT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 강화를 위해 거짓 깃발 작전, 즉 위장 전술을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단정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내부 세력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