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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탓은 1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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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여러 실책이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5년 내내 이어진 적폐 청산이 아니었나 싶다.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킨 촛불시민들의 염원을 딛고 출범한 정부이니 과거와의 단절이 중요하긴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국정과제 1호로 설정한 적폐청산 작업에 정권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부처마다 만들어진 ‘적폐청산 TF’는 전 정부 적폐는 눈곱만큼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로 먼지 털 듯 덤벼들었다.
그래도 1년 정도면 충분했다. 5년 단임 정부가 5년 내내 과거와만 싸우고 있으면, 미래가 있을 턱이 없다. 그는 영화 ‘문재인입니다’ 인터뷰에서 “5년간 이룬 성취”에 강한 애착을 드러냈지만, 솔직히 문 정부가 만들어낸 의미 있는 유산을 잘 찾지 못하겠다. 소득주도성장, 임대차3법, 비정규직 제로 등 촘촘한 설계 없이 착한 취지만을 내세워 밀어붙였던 정책들은 쓴맛을 동시에 남겼다. 정권을 내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곧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문제가 발생하는 족족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겨울 난방비 폭탄에 서민들 아우성이 빗발치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전기∙가스요금 동결 정책에 맹공을 퍼부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이 과학이 아닌 이념과 포퓰리즘에 기반하면 국민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했다.
전세사기로 피해자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자 그 원인을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찾았다. 임대차3법이 밀어 올린 전셋값, 그리고 무분별한 전세대출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몰아붙였다. 급증하는 마약범죄는 검찰의 마약 수사를 통폐합해 대응 역량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했고, 코로나19 대응으로 늘어난 국가부채는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했다. 경기 둔화도, 저출산 문제도, 국민연금 고갈 위기도,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도 모두 근본적인 책임은 전 정부에 있다는 게 지금까지 윤 정부의 인식이다.
수긍할 부분이 충분히 있다. 전기∙가스요금을 제때 올려 폭탄을 막았어야 했고, 임대차3법의 부작용을 먼저 살펴야 했고, 아무리 비상시국이라지만 나라 빚 폭증에 그리 둔감해서는 안 됐다. 5년간 투입된 146조 원의 저출산 예산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이걸 비판하자면, 윤 정부는 달라야 한다. 과연 그런가. 전기∙가스요금은 한전 책임만을 강조하며 미적대다 이제서야 찔끔 인상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수수방관했다. 문재인 정부가 4지선다만 던져놓고 방치했던 국민연금 개혁을 이 정부는 3대개혁 과제로 의욕적으로 올렸지만 아직까지 누가 답을 내놓을지를 두고 핑퐁만 한다. 그뿐인가.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저출산 대책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솔직히 기억에 남는 대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나경원 전 부위원장이 즉흥적으로 던졌다 철퇴를 맞은 ‘출산 시 대출금 탕감’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가 되풀이하더니, 이 정부는 주인 없는 기업 KT 사장 후보들에 대한 찍어내기를 반복한다.
5년 내내 전 정부 탓만 하라고, 또 모든 정책을 전 정부 이전으로 원상 복귀만 해놓으라고 국민들이 정권을 주진 않았다. 새로운 판을 짜는 집권 1년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남은 4년은 책임도 비판도 온전히 윤 정부 몫이어야 한다. 말로 헐뜯고 비난할 게 아니라 성과로 전 정부를 넘어서면 된다. 성공하는 최고경영자(CEO)는 다 그렇다. 그래야 다음 정부에 의미 있는 유산을 남길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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