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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무단가동, 더 잦아질 폭주

입력
2023.05.02 00:00
27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 통신선 및 개성공단 무단가동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 통신선 및 개성공단 무단가동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전 남북관계를 전망하면서 공약대로만 이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1년 전 바로 이 지면을 통해서였다. 당시 필자는 남북관계의 원칙과 실용을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결국 돌발악재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원칙인지 무엇이 실용인지 분명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진실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개성공단 내 우리 기업 설비들을 북한이 무단 가동하고 있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포착되면서 통일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아니, 원칙적으로!) 공개성명을 발표했다. 남북 간 투자보장 합의서 위반을 규탄하고 북한의 합의 파기에 대한 법적 조치도 예고했다. 권영세 장관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3국 관계자에게 개성공단의 총괄 관리를 맡기려는 움직임을 공개하기도 했다.

남북관계사에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남한의 통일부 장관이 책임을 진 사례가 몇 차례 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가 도마에 오르면서 통일부 장관이 자리를 내놓았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 악화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도 통일부 장관이었다. '증오로 증오를 이길 수 없다'는 고담준론을 남기고 떠난 통일부 장관은 정치적 협상의 당사자라기보다는 사회적 존경을 원하는 서생처럼 비쳤다. 북한이 통일부를 향해 '밥통부'라는 조롱을 서슴지 않게 된 데에는 자신들이 통일부 장관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착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개성공단의 일방적 가동은 북한 당국에 남북합의보다 체제 내부의 정치경제적 필요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반공화국삐라'를 문제 삼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식 대남전략에 따르면 대북전단과 같은 체제 위협요인은 연락사무소를 날려서라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 체제 위협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투자보장 합의서 같은 남북관계의 성과는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 또한 북한식 대남관(觀)의 발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남북합의의 성과들을 해체해버리기 직전 남북 연락채널을 먼저 차단한 것도 유사한 행동패턴으로 해석된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쳐온 요인은 대략 세 가지로 분석되어왔다. 첫째, 신냉전과 미중갈등, 한미동맹과 북중관계 등 한반도 주변 국제환경이 남북관계의 배경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둘째,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른 협상과 갈등, 긴장과 타협 등 관계적 요인이 남북관계의 관행을 규정하고 역사를 형성해왔다. 셋째, 국내요인, 즉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북관 차이에 따라 민족화해를 중시하는 시각과 국가주의적 관점이 대립하며 남북관계의 향배를 결정해왔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개성공단의 일방적 가동은 남북관계를 형성하는 요인들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있다. 남한 국내요인이 아닌 북한의 내부요인에 따라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이리로 끌고 가거나 저리로 밀어버리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개성공단 무단 가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규명하고 합당한 조치를 얻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남북관계의 작동 방식을 바꿀 수도 있는 사안으로 인식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짚고 넘어가는 것이 통일부의 역할이다. 아흔을 넘긴 국군포로들도 70년 전 강제노역에 대해 법에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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