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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혀야 할 책이 없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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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인 지난 23일 오후. 서울 도심 서울광장에선 독서증진을 기치로 한 ‘야외도서관 행사’가 열렸다. 때마침 공휴일이라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광장을 채웠다. 어린이들은 잔디밭 돗자리 위에서 뒹굴뒹굴 만화책을 들추거나 싫증이 좀 난다 싶으면 광장에 마련된 놀이기구를 타며 뛰어놀았다. 햇살 좋은 봄날에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대신 도서관과 책 잔치에 데려온 부모들이라 그래도 ‘책’의 가치를 존중하겠거니 짐작했던 터. 어린이들 역시 또래에 비해 활자매체에 친숙하고 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모들에게 물으니 모두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유튜브에 빠져 있어요.”
방송인이자 책방 경영자로 이날 서울광장에서 북토크를 진행한 ‘책 인플루언서’ 김소영, 오상진 부부조차 비슷한 얘기를 했다. 집에 서점 수준의 서재를 갖추고 있지만 부부는 “우리 딸(4세)도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은 여러 매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정보기술(IT) 발전과 매체환경 급변으로 지식 전달 매개체로서 책의 위상 약화와 독서인구 감소는 예견된 미래로 보인다. 디지털 매체에 친숙한 세대일수록 독서의 효용감을 덜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중고생들의 독서율이 모두 하락세인 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보인다.
그렇다면 책 읽기란 쓸모없는 일일까. 독서가들은 지식과 정보의 매개체로서 책의 역할은 약화될지 몰라도 인간 이해의 창(窓)으로서 독서의 효용은 대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동의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통찰처럼 ‘한 인간의 깊이는 인간 이해의 깊이’라면 인간의 깊은 곳을 탐험하는 길잡이로써 디지털 매체가 책 읽기를 갈음하리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들의 독서력 쇠퇴는 개인의 손실만이 아니다. 한 공동체가 쌓아온 방대한 지식의 유지와 관리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동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독서 경험을 쌓고 책 읽기 취미를 키워주는 지역의 도서관들이 홀대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건 걱정스럽다. 출판사ㆍ인쇄소ㆍ작가들이 밀집해 ‘출판 메카’로 불리는 서울 마포구에서 불거진 문제는 상징적이다. 마포구는 지난해 말 지역 문화거점 역할을 해온 관내 작은 도서관(9개) 중 3분의 1을 스터디 카페 형식으로 전용하려 했다. 비판이 나오자 이를 마지못해 철회했지만 최근 도서관 사업예산 삭감안에 반대한 지역 중앙도서관장을 직위해제하고 징계에 착수했다. 광역단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올초 서울시와 대구시도 작은도서관 예산을 삭감했다가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서야 고집을 꺾었다.
도서관에 '읽혀야 할 책'이 없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전체 도서관 예산은 늘어나고 있지만 도서관 총예산에서 자료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9.9%에서 2021년 8.9%로 줄었다.(표순희 숭의여대 교수). 빠듯한 자료구입 예산으로 도서관은 시민들이 원하는 베스트셀러나 아동도서 위주로 구입한다. 도서관들이 한 사회의 지적 기반이 되는 인문ㆍ학술서를 사들이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문학술 출판사 관계자들은 “500부만 팔 수 있다는 확신만 서면, 내고 싶지만 내지 못했던, 그러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문ㆍ학술서들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전국 1,000여 개 공공 도서관에서 1부씩만 구입해 준다면 우리나라의 인문학술 인프라는 훨씬 튼실해지지 않을까. 넓고 깊은 안목으로 독서진흥책과 도서관지원책을 들여다볼 정책 당국자들의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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