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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전쟁에서 애국주의의 도구로... 중국에 6ㆍ25는 무엇이었나

입력
2023.04.21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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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항미원조'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 포스터. 바이두 연합뉴스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 포스터. 바이두 연합뉴스

“중국 문화ㆍ예술 환경에서 국가로부터 전적으로 자율적인 목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중국 작가들은 (애국주의) 서사에 도전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며 자신의 시선을 그 사이사이에 숨겨 놓는 데 능하다.”

중국의 고약한 태도를 꾸짖는 목소리는 넘쳐난다. 맹목적 애국주의, 고압적 외교방식, 홍콩에서 보여준 폭력을 동반한 실력행사까지. 반중 정서는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지만 의문은 남는다. 모든 중국인, 모든 중국 사상이 애국주의로 통일됐냐는 물음이다.

항미원조ㆍ백지운 지음ㆍ창비 발행ㆍ385쪽ㆍ2만2,000원

항미원조ㆍ백지운 지음ㆍ창비 발행ㆍ385쪽ㆍ2만2,000원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조교수가 쓴 ‘항미원조’는 색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주제 자체도 새롭다. ‘중국인들에게 항미원조는 어떤 의미인가’를 다뤘다. 항미원조(抗美援朝)는 중국이 6ㆍ25전쟁을 부르는 공식 명칭으로,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하다’라는 뜻이다.

저자는 6ㆍ25를 향한 중국의 이중적 태도부터 짚어 나간다. 중국으로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에 맞서 중공군의 위력을 보여준 항미원조가 자랑스러울 만했다. 공식적으로도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한 위대한 승리’로 포장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없던 일’ 취급을 했다.

모두 미국 때문이다. 중국은 1960년대 미국은 물론 소련과도 대립하던 사면초가 신세였다. 결국 미국 도움을 받아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 기간 240만 명을 투입해 30만 명이 희생된 항미원조는 ‘국가에 의해 기억에서 지워진 전쟁’이어야 했다. 6ㆍ25 당시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가 마오쩌둥과 대립하다 숙청당한 내부 사정도 항미원조를 중국 공적 역사에서 사라지게 했다.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를 영화화한 '압록강을 건너'의 스틸컷. 사진 국제재선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를 영화화한 '압록강을 건너'의 스틸컷. 사진 국제재선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며 분위기가 격변했다. 지금은 '항미원조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철수하는 미군을 사지로 몰아넣은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다룬 영화 '장진호', 40부작 대하드라마 ‘압록강을 넘어’, 다큐멘터리 ‘항미원조’ 등이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집중적으로 제작됐다.

이들은 모두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미화하는 애국주의 서사를 가졌다. 국뽕영화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금강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다룬 영화 '금강천'(2020). 부당한 상사의 명령에 황당해하는 병사,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전선 상황 등이 희극적으로 표현됐다. 애국주의 서사의 빈틈 속에서 ‘개인적 감정과 사건이 전쟁을 뒤흔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달한다.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웃음과 박수로 승리를 만끽하는 공산당 고위층의 모습과 대비되며 전쟁의 부조리를 느끼게 한다.

미중대결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진핑의 중국은 항미원조를 계속 이용해 나갈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악성적 정치 환경을 타고 항미원조가 서사의 공간을 확보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반갑다”고 한다. 예술이란 갈등과 협상 타협이 발생하는 역동적 공간이며, 6ㆍ25 전쟁이 발굴되고 재현되는 과정에서 “주선율(主旋律ㆍ당의 프로파간다)과 다른 시선과 목소리가 비집고 나올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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