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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cm 봉 몸에 넣고 발로 차 장기 파열... 잔혹 살해의 대가 '징역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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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2021년 12월 3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스포츠센터 직원들이 한 해의 끝자락을 기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오가는 이야기 속에 술잔을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졌고, 덩달아 직원들의 취기도 올랐다. 센터 대표인 한모(42)씨와 직원 A(사망 당시 26세)씨도 취하긴 마찬가지. 두 사람은 다른 직원들이 집에 간 뒤에도 계속 술을 마셨다.
둘의 술자리는 자정쯤이 돼서야 마무리가 됐다. A씨는 센터 건물 1층으로 내려가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하지만 기사는 영 오지 않았다. A씨는 그러자 "직접 차를 몰고 귀가하겠다"고 했다. 물론 그 한마디가 불러올 화(禍)를 그땐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술을 처먹어도 이 XX야, 운전석에는 타지마. XX놈아 내가 너를 이렇게 가르쳤냐." 한씨가 갑작스레 화를 냈다. 그는 A씨를 다시 센터로 데리고 올라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내내 한씨는 화를 멈추지 않았다. 분노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한씨는 급기야 A씨를 주먹으로 때렸고, 바닥에 밀쳐 넘어뜨렸다. 청소기 봉으로 A씨 얼굴과 몸을 수차례 때렸고, 발로 짓밟기까지 했다.
잔혹한 폭행의 끝은 살인이었다. 한씨는 31일 오전 2시쯤 바닥에 쓰러져 있던 A씨의 몸 안으로 길이 70cm 플라스틱 운동용 봉을 강하게 밀어 넣었다. 봉을 몸 안에 제대로 꽂으려고 수차례 강하게 차기도 했다. 봉은 A씨의 직장·간·심장을 파열시켰다. A씨는 결국 사망했고, 한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 선 한씨는 "A씨를 살해한 건 인정한다"면서도 "심신미약이었다"고 주장했다. ①범행 당시 음주 시 공격성을 유발하는 금연치료 의약품을 복용했고 ②소주를 평소 주량의 3배 이상에 달하는 2병 반에서 3병을 마셔 A씨를 '일면식도 없는 변태'로 오인할 만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그러나 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씨가 A씨 몸에 봉을 넣어 사망하게 한 직후 "변태XX가 와서 XX 때리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한 점에 주목했다. 신고 내용이 한씨가 A씨를 폭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취지였다. 한씨가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 행패를 부려 싸웠는데 그 사람은 도망갔고, 피해자인 A씨는 술에 취해 자고 있다"며 자신이 신고해 출동한 경찰을 돌려보낸 점에 대해서도 범행을 은폐하려고 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봉을 A씨 몸 안에 밀어 넣은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씨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음주운전을 떠올리기만 해도 엉덩이가 아픈 걸 생각나게 하려고 A씨 엉덩이를 때렸다"며 폭행 당시 심정과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을 뿐 아니라 "봉을 A씨의 다리 사이에 넣고 뺀 기억이 있다"며 범행 상황을 대략이나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결국 "한씨는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면서 폭력을 행사하고 봉을 A씨의 몸에 밀어 넣었다"며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결론 내렸다.
1심 법원은 지난해 6월 한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내용과 방법이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하다"며 "A씨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죄책은 선처를 바랄 수 없을 만큼 매우 무겁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씨가 범행 자체는 인정하고 있고 △계획적으로 한씨를 살해하려고 한 건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 검찰과 한씨는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일단 "형량이 너무 세다"는 한씨 측 주장에 대해선 "한씨의 범행은 고통의 강도와 시간적 계속성 등 측면에서 볼 때 통상의 정도를 넘어선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한 것이라 잔혹한 범행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 측 주장도 기각했다. ①한씨의 범행은 살해 욕구를 채우기 위해 2인 이상을 살인한 경우가 아니고 ②범행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반성을 안 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한씨가 A씨와의 사소한 시비가 촉발이 돼 스포츠센터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면서 충동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범행이 우발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법원은 결국 범죄 자체의 잔혹성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성과 계획성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결국 징역 25년 선고가 합리적이라고 봤다. 대법원도 지난 13일 원심을 확정했다. A씨 누나 고금선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사람을 참혹하게 죽여 놓고 25년은 말도 안 되게 적은 형량"이라며 "법원이 이것저것 참작해준 게 너무 많은데, 피해자는 도대체 어디서 위안을 받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 유족은 지난달 한씨를 상대로 9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등을 배상하라는 취지다.
유족은 B법무법인과 법인 소속 이모 변호사를 상대로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이 지난해 1월 한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달라고 했지만, 이 변호사가 1억 원 상당의 가압류 신청만 하는 바람에 승소 시 받을 법정이자가 7,500만 원가량 줄었다는 것이다. 고씨는 "이 변호사가 살해 유족의 법률대리를 해서 승소했다는 타이틀을 얻고 정치에 활용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불성실했다"며 "머리만 좋다고 변호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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