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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동네 싸움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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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선거제도 개선을 위해 20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가 13일 막을 내렸다. 나흘 동안 100명의 여야 의원들이 발언대에 섰지만, 토론과 합의 없이 릴레이로 개인 의견을 무질서하게 쏟아냈을 뿐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적지 않다. 비례대표 수 조정을 두고선 여야의 입장 차가 첨예했고,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선 같은 당내에서도 이해가 갈렸다. 이런 식이면 말만 요란하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불신이 팽배하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초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7분 연설이다. 첫 번째 발언자여서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정답을 제시해서도 아니다. 그의 연설이 울림이 컸던 건 적어도 왜 선거제를 개편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진솔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가 화두로 꺼낸 건 ‘반사이익의 정치’다. 남의 말에 조롱하고 반문하고 모욕 주면 끝인 저주와 혐오의 정치, 그래서 일 잘하기 경쟁, 대안 경쟁 없이 기득권에 안주할 수 있는 선거제를 거대 양당이 방치해 온 것 아니냐는 자기반성이었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설명하는 방식이 ‘30%의 함정’ 이론이다. 계산이 쉽게 총선 투표율을 60%라고 가정하면(2000년 이후 실제 총선 평균 투표율은 57.05%였다), 길거리에서 만난 100명의 유권자 중에 40명은 투표를 하지 않는 셈이다. 나머지 60명이 투표에 참여하는데 그중에 절반, 즉 전체 유권자의 30%의 지지만 얻으면 당선될 수 있다.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의 마법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양쪽 모두 30명만 바라보는 진영 논리에 종속되기 쉽다. 나머지 70명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양대 정당의 지지율은 3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가장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이 32%, 민주당은 33%를 기록했다. ‘30%의 함정’ 이론은 지금 한국 정치에 대입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상대당 지지층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중도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안 해도 된다. 가뜩이나 이념과 지역으로 분열된 한국의 정치 지형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극대화시킨다. 그 결과가 적대적 양당 정치다. 30%만 붙들고 가면 된다는 계산은 국회의원이 적대적 정치의 전사로 전락해도 무감각하게 만드는 마약과 같다.
이 의원 연설이 재조명한 20년 전 노무현의 일갈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적었다.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지역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정책개발보다는 다른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선거구조 안 바꾸면 대한민국 정치는 계속 동네 싸움에 불과하다.”
뻔히 문제를 알면서도 20년 동안 지연된 개혁의 폐해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증오와 혐오의 정치는 지역주의를 넘어서 세대와 성별로 번졌다. 이제는 더 나아가 30%의 지지층이 아니라 1%의 극단적 팬덤에 정치가 좌우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국익과 민생이 정쟁의 소모품이 될 순 없다. “초심대로 정치하고 싶다”는 이탄희의 절규를 나머지 299명의 국회의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4년 전 꼼수 위성정당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국회가 제대로 된 선거제 합의안을 도출하기 기대한다. 언제까지 우리 국회가 동네 싸움만 하면서 날을 샐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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