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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은 당신의 반쪽을 알고 있다…'자만추'보다 자연스러운 '알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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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발전 속도가 무섭도록 빠릅니다. 몇 년 전 바둑에 통달하더니, 이젠 철학 에세이를 쓰고, 변호사 시험에 척 붙습니다. AI 전문가들조차 속도를 부담스럽게 여길 지경이죠. 그러나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하는 AI를 ‘어떻게 쓸지’를 두고 아직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목숨과 운명이 걸린 일에 AI를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는 기술적 문제라기보단 인문학(윤리학)이 풀어야 할 질문입니다. AI 전성시대에 인간이 마주한 딜레마, 그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10번이 넘는 소개팅에 번번히 실패한 끝에, 친구의 추천으로 가입한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남에 성공했다. 김씨는 "제가 등산이나 골프 등 액티비티를 좋아하는데 여자친구도 비슷해서 함께 운동을 하면서 친해졌다"며 "사는 곳도 가깝고, 성격도 비슷해 진지하게 결혼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추천 알고리즘을 앞세운 소셜 데이팅 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데이터에이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소셜 데이팅 앱 다운로드 수는 19억 회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사람들이 데이팅 앱에 지출한 금액만 59억 달러(약 7조5,000억원)로 역대 최고치다.
국내에서도 추천 알고리즘을 앞세운 소셜 데이팅 앱들이 인기다. 애플 앱스토어 기준 매출 상위 20개 앱 중 3개(위피·틴더·글램)가 데이팅 앱일 정도. 남녀의 만남이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와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로 갈리던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AI를 주선자로 삼은 '알만추'(알고리즘에 의한 만남 추구)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AI 추천 알고리즘이 연애·결혼 비즈니스 시장까지 깊숙이 침투한 비결은 '나조차 몰랐던 내 선호'를 AI가 발빠르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소셜 데이팅 앱은 두 가지 정보를 토대로 알고리즘을 작동시킨다. △가입 시 기입하는 나이와 키, 체중, 직업 등 이용자의 개인정보와 △이용자가 선호하는 상대방의 나이와 성격, 이상형 등 상대방의 정보다. AI는 이 정보를 학습해 기존에 그룹핑(grouping)된 유사한 특성을 가진 이용자들의 짝짓기(매칭) 정보를 토대로 이용자의 마음에 들 상대를 추천한다.
매칭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도 나와 딱맞는 상대를 찾는 작업에 반영된다. 이용자가 탐색 과정에서 선호·비선호 표시를 했던 정보를 다시 추천 알고리즘에 적용해 추천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다. 가령 이용자가 30대 초반의 이성에 줄곧 호감을 표시했다면 이를 반영해 비슷한 나이대의 이성을, 안경을 낀 사람을 마음에 들어했다면 안경을 낀 사람을 더 추천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어떤 특성에 가중치를 둘 것인지는 각 플랫폼의 몫이다. 미국 앱 틴더의 경우 '거리' 정보를 토대로 물리적으로 가까운 상대를 골라주는 게 핵심이다.
국내 소셜 데이팅 앱도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위피는 '동네 친구를 연결한다'는 모티브로 2017년 나온 소셜 디스커버리 서비스다. 국내 소셜 데이팅 앱 중 매출이 가장 높은 만큼, 많은 유저 수를 자랑한다. 위피는 유저의 누적행동 데이터 31억 건과 5,000GB의 데이터로 이용자의 선호도를 분석해, 이상형 상대와의 매칭확률을 높여서 매칭 건수를 이전보다 2.3배 늘렸다고 한다.
또 다른 소셜 데이팅 서비스인 글램도 이용자의 자기소개를 분석해 매력도를 수치화한다. 성별, 연령, 국가, 문화권 선호도를 바탕으로 상대와 이어질 가능성을 예측해 상대를 추천한다. 김남수 큐피스트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유저 두 명을 연결하는 과정은 검색엔진 원리와 비슷하다"면서 "상대를 찾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설문의 형태로 수집한다"고 전했다.
사람 매니저에게 추천을 맡겼던 기존 결혼정보업체들도 AI 추천 서비스를 도입했다. AI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적용한 결혼정보 플랫폼 '모두의 지인'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며 지난해 매출을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AI가 학습하는 정보는 학력, 재산 현황, 키와 체중, 선호하는 상대의 나이와 이상형 등 자세하다.
모두의지인을 운영하는 테키의 신민호 공동대표는 "전통적 결혼정보회사의 '등급' 제도가 AI 추천 알고리즘에서는 자동적인 '그룹핑'이라고 보면 된다"며 "다만 AI는 단순히 나이나 키, 직업이나 재산뿐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그룹핑을 하기 때문에 무한대의 그룹으로 나눠 미리 만남 가능성을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 매니저는 혼자 담당하는 회원만 300명이 넘어 고객 한 명, 한 명의 이상형을 기억하기 어렵지만, AI 추천 알고리즘은 만족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첫 만남 상대와 어떻게 대화하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지를 AI가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챗GPT를 기반으로 한 미국 앱 '유어 무브'는 사용자가 대화 내용이나 정보를 스크린샷 이미지 형태로 입력하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멘트, 웃긴 대답, 진중한 메시지 등을 생성해준다. 어떤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추천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AI 매칭 서비스가 저출산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인 일본은 2020년 정부 예산 20억 엔(약 196억 원)을 투입해 지자체에 AI 중매 시스템 고도화에 나섰다. 일본 내각부 저출산 대책 담당자는 "AI 중매 서비스가 기존 서비스보다 효과적"이라며 "사이타마현에서는 2019년 성혼한 21쌍이 AI로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에히메현에서도 AI 빅데이터를 활용한 뒤 맞선 성립 비율이 13%에서 29%로 올랐다"고 설명했다.
국내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AI 맞선 서비스가 있다. 경남 하동군은 지난해 7월부터 AI 비대면 매칭 서비스인 'AI 맞썸다(多)방'을 운영 중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서비스인데, 성격이나 라이프스타일 등 성향 검사를 통해 수집한 정보로 나와 맞는 상대를 AI가 추천한다. 하동을 비롯해 진주·사천·여수·순천 등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 소속 지자체에 거주하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달 기준 가입자가 313명에 머물러 큰 효과를 보고 있지는 않다. 하동군 관계자는 "지방이다 보니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으신 데다 기존의 결혼정보업체는 고액의 금액을 내고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AI 맞썸다방 서비스를 준비하게 됐다"면서 "홍보 문제로 아직까지는 이용자 수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AI 알고리즘이 고도로 발전하는 미래에는 AI가 나에게 딱 맞는 '천생연분'을 찾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업계 전문가들은 분명히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사람들이 AI에 100% 의존하는 형태의 만남을 원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위피를 운영하는 엔라이즈의 허형구 프로덕트 오너(PO)는 "생성형 AI 기술 덕에 추천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고도화될 것"이라며 "다면 챗GPT가 가끔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것처럼, 추가적인 학습을 할 때 얼마나 사람이 적절하게 보정할 수 있는가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신민호 대표는 "AI가 나에게 잘맞는 상대를 추천해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 "추천은 AI가 해주지만, 어디서 상대와 만나 어떻게 대화할지 등은 결국 인간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허위·악성 유저, 데이팅 앱을 통한 사기 등의 문제가 산적하다. 지난해 8월에는 특정 데이팅 앱을 이용해 여성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 4만여 명으로부터 11억여 원을 뜯어낸 혐의 20대 남성 3명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현재 소셜 데이팅 플랫폼이 집중해서 개발하고 있는 AI 기술은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보다 허위 이용자 적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사진과 이용자의 실제 얼굴을 비교해 인증하거나, 악성 이용자의 프로필을 대량으로 학습시켜 가입 단계에서 유입을 원천 차단하기도 한다.
글램의 경우 지난달 이용자가 등록한 프로필 사진과 실제 이용자의 얼굴이 일치하는지 AI가 분석하는 시스템을 내놓았다. 김남수 CTO는 "소셜 데이팅 앱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라기 보다 신뢰의 문제"라며 "소개팅도 믿을만한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듯 '이 플랫폼을 사용하면 믿을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소셜 데이팅 업체들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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