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은 공정성과 합의가 기본이다

입력
2023.04.12 04:30
수정
2023.04.12 08:19
25면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에 대한 토론을 중단하는 안건에 대해 기립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 요구안'에 대한 토론을 중단하는 안건에 대해 기립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자면 데자뷔가 느껴진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1년여가 지났던 2018년 봄에도 여야 간 방송법을 놓고 지루한 대립과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여야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5년 전 여당인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을 뿐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 방송법 개정을 위해 본회의 직회부 카드까지 강행하고, 국민의힘은 여기에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언론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비생산적인 대립만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이 우려된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진은 관례에 따라 여권과 야권이 비율대로 추천한 인사로 꾸려진다. 현재 KBS 이사진은 여당 성향 7명, 야당 성향 4명의 11명으로 구성됐다. MBC 방송문화진흥회는 9명의 이사를 여당은 6명, 야당은 3명으로 EBS 이사회는 9명 이사를 여당과 야당이 각각 7대 2의 추천으로 구성하고 있다. 공영방송 3사 모두 여당 추천 이사진의 비중이 3분의 2에 달하다 보니, 정권을 잡은 이들에 의해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왔었고, 우리는 그 폐해를 계속 목격해왔다.

여도 야도 자신들은 다르다고 주장하겠지만, 한국 공영방송의 역사는 정치권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현행 방송법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공영방송의 책무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나아가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 민주당이 제안한 개정안이 옳다거나, 법안을 추진하는 방식이 정당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방송법 개정안은 분명 개악이고 정파적 발상이다. 기존 법안에 수정이 필요하다면 의석수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정책적 토론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권 시기에는 정작 자신들이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도 충분한 의석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과시키는 데 관심과 성의가 없었다. 이러한 전력이 있었기에 이번 개정안 발의가 공영방송을 제대로 세우자는 의지보다는 여당의 위치를 잃고 나니 공영방송이 상대당의 영향력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정치적 우려 때문에 무리한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이다. 쉽게 개정할 수 있었던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여야 위치가 바뀐 지금에서야 여당과의 마찰을 감수하더라도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국민의힘 또한 집권여당으로서 정책정당으로서 민주당 개선안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여당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지금이라도 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여당과 토론해야 한다. 여야가 마주 앉아서 한국의 공영방송이 그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적 방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 바란다.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제대로 법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1년, 10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린다고 해도 국민들은 기다릴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올바른 국회의 모습일 것이다.


안호림 인천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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