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사람을 키우는 미래전략

입력
2023.04.06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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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사람은 하루 이틀 사이에 크지 않는다. 적어도 이삼십 년은 자라야 그 쓸모를 알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으면 나무와 사람에 대해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은 미래의 꿈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서만 가능한 발언이다.

50년 전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나무와 사람을 가꾼 기업인이 있었다.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다. 최 회장은 우리가 어렵게 살던 시절 산림을 훼손해 민둥산이 늘어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1972년 오늘의 SK임업을 설립했다. 헐벗은 산에 고품종 나무를 심어 50년, 100년이 지나가면 그 나무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사람을 키우는 장학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다는 큰 꿈을 꾸면서 인재와 목재의 숲을 조성한 것이다. 50년이 지난 오늘 인등산은 400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 서울 남산의 40배 정도 크기로 울창한 숲이 되었다.

최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굳게 믿은 기업인이었다. 1974년 최 회장이 개인재산으로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내년에 50주년을 맞는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최우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학업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재정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당시 우리나라 수준에서 매년 단독주택 한 채를 팔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프린스턴, 버클리, 시카고 등 최우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조건으로 사회과학 유학생들을 일 년에 열 명 정도 선발해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했다.

왜 이공계 학생들이 아니고 사회과학 학생들을 선발하냐고 묻자 최 회장은 30~40년 후가 되면 SK는 세계 500대 기업이 되고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이 될 텐데 그러면 사회가 복잡해져 사회문제를 해결할 인재들이 필요하게 된다고 답했다. 미국 출장을 오면 직원들과 만나는 것보다 호텔 숙소나 유학생 숙소에 재단 유학생들을 모아 놓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던 최 회장이셨다.

사회과학 해외유학생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적 뿌리를 계승하기 위해 국내 대학원 한학장학생들도 지원했다. 국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1973년 시작한 장학퀴즈도 올해 5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최장수 TV프로그램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양성에 있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이러한 장학사업은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져 KAIST 사회적기업 MBA과정과 최종현학술원 출범 등으로 지식 세계를 통한 인재육성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1세기 미래사회는 지식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인재육성이 한 나라의 경쟁력에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올해 SK그룹 창립 70주년과 내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50주년을 맞아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며 나무와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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