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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 곡창지대·맹그로브숲이 ‘새우 양식장’으로 변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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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목요일마다 함께하세요!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 남서쪽으로 140㎞ 떨어진 짜빈성. 지난달 21일 베트남 동해(남중국해) 인접 지역 롱토안에 들어서자 광활한 대지 위로 네모반듯한 ‘작은 저수지’가 끝도 없이 빽빽하게 펼쳐졌다. 연녹색, 검녹색 등 다양한 색상의 물이 담긴 크고 작은 저수지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거대한 테트리스 같다.
“왜 이렇게 저수지가 많고 비좁게 붙어 있느냐”는 질문에 사회적 기업 맹그러브(MangLub)의 팜하이티(38) 이사는 “저건 전부 새우 양식장”이라고 답했다. 2, 3년 정도 한곳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면 새우 배설물과 사료 찌꺼기, 세균으로 물이 오염돼 까맣게 변하고 못 쓰는 땅이 되는데, 이를 버리고 인근 논이나 숲을 벌채해 새 양식장을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이날도 논과 공터 곳곳에서 굴착기가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이곳이 원래부터 새우 양식장이었던 건 아니다. 20~30년 전만 해도 한쪽으로는 비옥한 쌀 경작지가, 다른 쪽으로는 광활한 맹그로브(mangrove)숲이 울창하게 뻗어 있었다. 대체 메콩 델타(삼각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짜빈성에 즐비한 새우 양식장은 기후변화와 인간의 욕심 탓에 제 모습을 잃어가는 메콩 델타의 슬픈 단면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돼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까지 4,020㎞를 흐르는 메콩강은 6,000만 명의 삶의 터전이자 인도차이나의 젖줄이다.
특히 강 끝에 위치한 메콩 델타는 느린 유속 때문에 질 좋은 퇴적물이 쌓이면서 베트남을 동남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쌀 생산지로 만들었다. 베트남 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국가 전체 쌀 소비량의 55%, 수출량의 90%를 담당한다. ‘세계의 쌀 광주리’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가뭄이 잦아지고 해수면도 높아지면서 저지대인 이곳에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담수 수위가 낮아지는 건기(12~4월)에는 해수 침투 속도가 더 빨라진다. 지난달 베트남 수자원국은 메콩강 주요 지류 하구에서 최대 70㎞ 떨어진 내륙에서 리터(ℓ)당 4g의 염분(4,000ppm)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거리로만 따지면 인천 앞바다 바닷물이 경기 하남시까지 흘러 들어간 꼴이다.
메콩 델타 중심 껀터시,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산하 연구기관 끄롱 벼 연구소에서 만난 쩐응옥탁(55) 소장은 메콩강 지류 인근 지역 염도를 알려주는 앱을 보여 줬다. 델타 지역 12개성 중 속짱성과 짜빈성을 가르는 하우강, 짜빈성과 벤쩨성 사이를 흐르는 코찌엔강은 하류에서 약 40㎞ 거슬러 올라간 지점까지 붉은색 표시가 완연했다. 색이 짙을수록 강물 염도가 높다는 의미다.
탁 소장은 강물이 붉은 지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농가는 대부분 인근 강에서 농업용수를 끌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염도가 ℓ당 2.4g(2,400ppm)으로 나오죠? 벼농사를 할 수 있는 적정 염도가 1,000ppm인 점을 감안하면, 해수가 이곳까지 올라온 탓에 결국 벼가 고사하게 됩니다.”
그나마 과거엔 상류부터 힘차게 내려오던 강물이 바닷물을 밀어내며 제방처럼 염분을 막아줬다. 하지만 중국을 시작으로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속속 댐이 생기고 강물 양이 줄면서 해수 유입에 더욱 속수무책이 되고 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쌀 농사를 포기하고 새우 양식으로 눈을 돌렸다. 방법은 단순하다. 땅을 파고, 방수포를 씌우고, 바닷물을 채우면 끝이다. ‘장비’라 할 만한 것도 먹이와 산소를 공급할 수레바퀴가 전부다.
최소한의 장소와 자본으로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1㎡에 약 150마리의 새우를 몰아넣고, 사료와 질병 예방을 위한 항생제도 대거 투입한다. 새우 종류와 양식 방법에 따라 차이는 다소 있으나, 1헥타르(1만㎡)당 평균 15톤의 새우를 얻는다.
새우가 ‘돈벌이’ 역할을 하자 희생양도 생겼다. 수천 년간 해안선을 방파제처럼 지켜 온 맹그로브숲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베트남 맹그로브숲 절반 이상이 새우 양식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본다. 맹그로브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습지에서 자란다. 새우 양식업자 입장에선 △바닷가에 위치하고 △각종 생물 서식처로 영양분이 많은 맹그로브숲이 최적의 장소였다.
피해는 메콩 델타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엉킨 맹그로브 뿌리와 가지는 해안 지반을 단단히 잡아주고 바닷물이 저지대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왔다. 그러나 숲이 훼손되면서 해안 지역이 급속도로 침식하고, 바닷물도 전보다 더 빨리 내륙으로 침투하고 있다. 염해로 생산량이 줄어든 농민들은 결국 생계를 위해 논밭을 새우 양식장으로 바꾸거나 숲을 개간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메콩 지역에서 새우 양식에 사용되는 토지가 매년 3~5% 증가한다”고 전했다. 인도, 에콰도르에 이은 ‘세계 3위 새우 수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베트남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중앙정부는 94조 동(약 5조 원)을 투입해 메콩 델타 지역에서 16개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곳곳에 제방과 수문 장치를 설치한다. 쌀 생산성을 높일 연구도 진행 중이다. 끄롱 벼 연구소는 염도 3,000ppm에도 견딜 수 있는 벼를 개발했고, 일부 지역에서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 산업이 된 새우 양식을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도 이어진다. 2019년 한국 사회적협동조합 드림셰어링이 SK이노베이션 후원을 토대로 설립한 짜빈성의 첫 사회적 기업 ‘맹그러브(MangLub)’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맹그로브 조림(造林)을 중심으로 메콩 생태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찾은 A씨의 새우 양식장은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달랐다. 물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내민, 심어진 지 3주쯤 된 맹그로브 묘목 수백 그루가 특히 눈에 띄었다. 이 나무들이 성장하며 수면 아래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새우가 먹이를 얻는 생태계가 형성된다. 맹그러브는 “자연 상태에서 자란 새우는 인공적으로 키운 것보다 저항력이 세고,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며 A씨를 설득해 ‘생태 양식’에 나서도록 했다.
김항석(45) 맹그러브 대표는 “맹그로브와 새우를 함께 키우면 농약, 항생제 등 약물을 쓸 일이 크게 줄어든다”며 “메콩 델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 등에 수출되는 걸 감안하면 이곳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이고, 맹그로브숲을 보존하고 염수 침입을 막는 움직임은 결국 세계 식량 안보를 지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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