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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 외교안보라인 감청'... 우크라 전쟁 기밀 문건 유출 파문 확산일로

입력
2023.04.09 18:00
수정
2023.04.09 22:3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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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군사정보 문건 100쪽 SNS 유출 파장
"김성한, 폴란드에 포탄 판매 제시" 기재돼
한국 정부 "미국과 협의해 진상 파악할 것"
러시아 첩보 역량 공개... 동맹국 감청 정황
러 역공작 가능성... 출처 확인은 어려울 듯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월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예고 없이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월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예고 없이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기밀 문건 유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대(對)러시아 첩보 역량이 공개되고 우크라이나 전황까지 노출된 데 이어,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을 감청했다는 증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대통령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유출돼 외교적 파장도 예상된다.

미 유출 문건 2건, 한국 정부 감청 정황 담겨

미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기밀 문건 중 적어도 2건에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될 미군 포탄을 제공할지 내부 토론을 벌인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 국방부 문건에는 이문희 전 비서관이 김성한 전 실장에게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응해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 경우 정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아니게 될지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실장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라며 155㎜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에 판매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건 중 하나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 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무기 전달 압박을 가할 것을 한국 관리들이 우려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미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문건에는 정보 출처가 ‘신호 정보 보고(a signals intelligence reportㆍ시긴트)’라고 명시돼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미 정보기관이 전화 통화나 전자 메시지 통신을 중간에 가로채는 식으로 한국 정부 내부 논의를 감청 중이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한국에서 155㎜ 곡사포용 포탄 10만 발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었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방탄조끼, 의약품 등은 지원해도 살상무기 제공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포탄을 수출했다.

이번 문건 유출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일단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관련) 보도를 잘 알고 있고,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의할 예정”이라며 “과거 전례,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며 대응책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신중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지만, 한국의 핵심 동맹 국가인 미국이 한국 외교안보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중이었다는 냉정한 국제관계 현실이 확인된 만큼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NYT는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우방 국가와의 관계를 방해한다”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2월 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길거리에 파괴된 채 널브러진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 군용 차량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부차=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2월 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길거리에 파괴된 채 널브러진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 군용 차량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부차=EPA 연합뉴스


2월부터 SNS 유포... 내부자? 러시아 소행?

앞서 CIA, 국가안보국(NSA),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의 보고서를 미군 합참이 취합해 작성한 100쪽 정도의 문건이 사진 파일 형태로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처음 등장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 ‘4chan’에 유포되고 다시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으로 확산되면서 6일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유출 문건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최고 군사ㆍ정치 지도자들을 감시한 정황과 러시아 내부에 깊이 침투한 미군 첩보망의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전황,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ㆍ하이마스) 탄약 소진 속도, 무기 보급과 병력 증강 타임라인 등의 문서도 있었다. 우크라이나군 12개 전투여단 증강 일정, 우크라이나군의 독일 비스바덴 미군기지 기동훈련 참여 내용 등 ‘일급기밀’ 문서도 포함돼 있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NYT는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이번 유출이 ‘대규모 정보 유출’이라고 말했다”며 “미국 정보 요원들이 러시아 군사기관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지를 러시아에 보여주기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켰다”라고 전했다. 다만 수백 명 이상의 군 관계자들이 이 같은 문서 접근 권한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유출됐는지 찾기 힘들 것이라고 NYT는 전망했다. 미 법무부, 국방부 등은 문건 유출 정황 조사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5일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주러시아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모스크바=EPA·스푸트니크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5일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주러시아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모스크바=EPA·스푸트니크 연합뉴스

물론 문건 유출이 러시아의 공작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유출 문서 대부분이 허위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실제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차단 및 이간질,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을 방해하기 위해 러시아가 가짜 정보를 퍼뜨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유출 문건 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사자 수는 사실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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