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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이유 없이 숨차고 어지러우면… ‘폐동맥 고혈압’ 생존율 2.8년 그쳐

입력
2023.04.09 16:00
수정
2023.04.10 16:3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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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동맥 고혈압을 조기 진단ㆍ치료하면 현재 50% 중반에 머물고 있는 3년 생존율을 3배가량 높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폐동맥 고혈압을 조기 진단ㆍ치료하면 현재 50% 중반에 머물고 있는 3년 생존율을 3배가량 높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무런 이유 없이 숨이 차요’ ‘쉬는데도 피곤해져요’ ‘가슴도 답답하고 붓는 것 같아요’. 일반인에게 낯선 ‘폐동맥 고혈압’의 주요 증상이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 압력이 평소 25㎜Hg 이상, 운동 시 30㎜Hg 이상일 때를 말한다. 폐동맥 벽이 두꺼워지면서 폐동맥 내에서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발생한다. 병이 악화하면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빠진다.

전신 무력감과 어지럼증, 만성피로, 가슴 통증, 실신도 생길 수 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돼 손발 끝이 차갑고 하얗게 변하는 ‘레이노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40대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장성아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젊은 여성 상당수가 활동량이 많지 않고, 30, 40대에는 임신ㆍ출산ㆍ육아 등을 겪으면서 건강에 신경 쓰지 못해 가벼운 호흡곤란이 생겨도 운동 부족으로 여겨 병원을 늦게 찾는다”고 했다.

◇병 인지도 낮아 확진에만 1.5년 걸려

‘폐 고혈압(pulmonary hypertension)’은 폐를 지나는 혈관 압력이 높아져 우심실 부전과 돌연사를 일으키는 난치성 질환이다. 국내 환자는 4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폐 고혈압 일종인 ‘폐동맥 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은 숨겨진 환자를 포함하면 4,500~6,000명으로 추정된다.

폐동맥 고혈압 증상은 빈혈ㆍ심장ㆍ폐 질환 등과 비슷하지만 치명적이어서 생존 기간은 2.8년 정도에 그친다.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절반가량은 심부전(心不全ㆍheart failure)으로, 나머지 절반은 돌연사로 사망한다. 아직까지 완치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게다가 병 인지도가 낮아 발병해도 정확히 진단하는 데 1.5년 정도 걸린다.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일반적인 빈혈ㆍ심장 질환ㆍ폐 질환 등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폐동맥 고혈압의 대표 증상은 호흡곤란ㆍ만성피로ㆍ부종ㆍ어지럼증 등으로 첫 진료 의사가 이 질환을 의심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또한 병을 확진하기 위해 정밀 검사가 필요한 것도 진단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교수)은 “폐동맥 고혈압은 폐 안쪽에 압력이 가해지는 질병이기에 심장 초음파검사를 시행해야 알 수 있다”며 “또한 확진하려면 관을 몸에 집어넣어 관찰하는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조기 진단하면 생존율 3배가량 늘어

폐동맥 고혈압은 완치하는 방법은 없지만 다양한 약으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국내를 비롯해 미국ㆍ프랑스 등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폐동맥 고혈압을 조기 진단하면 환자 생존율이 3배 정도 높아졌다.

또한 다양한 약제 개발로 생존 기간도 확진 후 2.8년에서 7.6년으로 늘어났다. 대한폐고혈압학회 연구 결과, 조기 발견해 전문적 치료를 받으면 10~20년 정도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폐동맥 고혈압 치료약이 전 세계적으로 11가지가 출시돼 있다. 하지만 에포프로스테놀(GSK)ㆍ리오시구앗(바이엘)ㆍ타달라필(릴리) 등은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 특히 가장 효과적인 필수 치료제로 알려진 에포프로스테놀은 27년 전에 개발돼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폐동맥 고혈압은 세계보건기구(WHO) 기능 분류 기준으로 1기(활동에 지장이 없는 상태), 2기(활동에 약간 지장이 있지만 쉬면 편안해짐), 3기(활동에 지장이 많지만 쉬면 편안해짐), 4기(쉬어도 호흡곤란ㆍ피로가 나타남)로 구분한다.

지난해 2월 국내 폐동맥 고혈압 진료 지침 개정으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4기에서 3기까지 확대됐다. 신성희 인하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치료에 약을 2가지 이상 쓰는 병합 요법을 시행하면 3년 생존율이 54%(2008~2016년)로 치료 성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정현 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폐동맥 고혈압 고위험군은 엔도텔린 수용체 길항제(ERA) + 포스포디에스터라제-5 억제제(PDE-5i) + i.v./s.c. 프로스타사이클린 유도체 등 3제 요법을 권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에서는 포스포디에스터라제-5 억제제 중 ‘타달라필’이 없어 병용 요법 허가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초기 폐동맥 고혈압일 때부터 3제 요법이 가능하고, 유럽도 지난해 8월부터 저ㆍ중위험군 환자에게도 ERA + PDE-5i 병합 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정욱진 대한폐고혈압학회 회장은 “이전에는 폐동맥 고혈압 진단을 사망 선고처럼 받아들였지만 이젠 조기 진단하고 병용 요법을 시행하면 생존율을 크게 올릴 수 있다”며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는 로마 철학자 마르쿠스 키케로의 말처럼 희망을 가져야 된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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