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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의지에도 '마약 음료' 배후 규명 난관... "퐁당 마약+피싱 신종범죄"

입력
2023.04.08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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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음료 권한 말단 4인조 전원 검거
전화사기 조직, 신종 범행 수법 가능성
경찰 "역할 분담 등 보이스피싱 빼닮아"
'행사'에 들고 나간 음료수만 약 100병
상시 단속 체계 구축... 검경 총력 대응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여성 2명이 판촉 행사를 위해 마약이 든 음료수를 들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독자 제공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여성 2명이 판촉 행사를 위해 마약이 든 음료수를 들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독자 제공

서울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고교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권한 4인조 일당이 모두 검거됐다. 이들은 단순 ‘심부름꾼’일 가능성이 커, 관건은 음료를 제조ㆍ유통하고 범행 시나리오를 짠 배후 세력을 밝혀내는 데 모아진다. 다만 추적에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경찰은 사건 배후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을 겨냥하고 있다. 정부 단속이 강화되자 전화사기 조직이 마약을 결합한 ‘신종’ 범행 수법을 고안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특성상 ‘몸통’을 찾아내는 일이 여간해선 쉽지 않다.

대포폰 지시, 협박 따로… 보이스피싱 판박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7일 서울 마포구 마약범죄수사대를 찾아 마약 음료 사건 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7일 서울 마포구 마약범죄수사대를 찾아 마약 음료 사건 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7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전날 대구에서 20대 여성 A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A씨를 포함한 일당 4명은 3일 오후 6시쯤 2명씩 짝을 이뤄 강남구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학생들에게 “집중력 강화 음료수 시음행사”로 포장해 마약이 든 음료수를 건넸다. 경찰은 관련 신고를 접수한 뒤 40대 여성을 검거했고, 20대 남녀 두 명은 각각 자수했다. A씨까지 붙잡히면서 일당의 신병을 모두 확보한 것이다. 피해자는 기존 학생 6명 외에 학부모 1명도 자녀가 가져온 음료를 마신 것으로 밝혀져 총 7명(6건)으로 늘었다. '시음행사'에 유통된 음료수만 약 100병에 달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경찰은 이들이 단순히 부업 차원에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총책, 중간 행동책, 말단 아르바이트 등 철저히 역할을 분담하는 보이스피싱의 범행 패턴과 빼닮아서다. 실제 일당은 “인터넷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전화사기처럼 지시는 추적이 어려운 대포폰과 텔레그램으로만 받았고, 마약 음료도 퀵서비스로 수령했다. 음료 복용 학생의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한 것 역시 제3의 인물이었다. “협박범이 중국동포 말투로 돈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단속 강화로 기존 수법으로는 범행이 어려워지자 술, 음료 등에 몰래 약을 넣는 ‘퐁당 마약’ 범죄와 보이스피싱을 결합한 신종 수법이 개발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마약범죄수사대를 찾아 “수법이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만큼 금융수사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행 방식을 알아냈다고 수사에 속도가 붙는 건 아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피싱 범죄는 철저하게 비대면 체계로 운영돼 조직원끼리도 서로의 인적 사항을 모른다”고 설명했다. 총책을 특정하더라도 핵심 조직원은 대부분 중국, 필리핀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어 해당 국가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는 한, 공조 수사는 원활하지 않다. 통계를 봐도 지난해 1~11월 보이스피싱 검거자 2만3,670명 중 ‘조직 상선’은 626명(2.6%)뿐이었다.

"전단 사탕도 먹지 마라"... 대치동 초비상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입시학원 앞에 '마약 음료' 관련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소희 기자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입시학원 앞에 '마약 음료' 관련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소희 기자

대치동 학원가는 초비상 상태다. 이들 일당이 인근 중학교에서도 마약 음료를 유포한 것으로 전해져 피해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날 만난 중3 고모(15)양은 “같은 반 친구가 음료를 받았다가 이상한 것 같아 안 마시고 버렸다”고 증언했다. 해당 중학교는 학생들에게 “홍보 전단에 붙어 있는 사탕도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고 한다. 고교생 자녀를 둔 한 주민은 “공부 잘 되는 약이라고 꾀니 학생들이 의심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게 안전한 나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빠른 수사를 위해선 주민 협조가 필수적이나, 신고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대치동 학원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학업도 버거운 자녀를 굳이 경찰 조사, 그것도 마약 사건에 얽히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실수로 먹었으면 절대 처벌을 받지 않고, 피해 사실이 많아야 범인들의 형량을 늘릴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청이 이날 수사차장(치안감급)을 단장으로 한 ‘범마약 단속 추진 체계’ 설치를 검토하고, 서울중앙지검도 경찰과 협조 체계를 강화하기로 하는 등 검경은 총력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일당이 학생들에게 권했던 마약이 든 음료수.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

일당이 학생들에게 권했던 마약이 든 음료수. 서울 강남경찰서 제공


박준석 기자
김소희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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