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 표류 2년... 그 사이 주민 60명이 세상을 떠났다

입력
2023.04.06 14:00
14면
구독

지난겨울,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촌에서 주민이 수도관이 동파돼 얼어붙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겨울,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촌에서 주민이 수도관이 동파돼 얼어붙은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한국일보는 서울 시내 쪽방촌 건물 소유주의 약탈적 임대 행위를 폭로('지옥고 아래 쪽방')했다. 비거주 소유주들이 건물에 관리인만 두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의 주거를 제공하면서도 월세를 꼬박꼬박 챙겨 간다는 내용.

보도를 계기로 국토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현장 활동가, 연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 용산참사 11주기였던 2020년 1월 20일 공공이 주도하는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됐다. 그간 거주민을 내쫓아온 폭력적인 개발 역사를 뒤로하고 주민 재정착 방안을 마련하며 민간 분양 주택을 건설한다는, '주거개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평가할 만한 일이었다. 앞선 영등포 사업이 순항하자 2021년 2월 '서울역(동자동) 쪽방촌 정비사업'이 발표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동자동 사업은 현재 지구 지정조차 완료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민간개발을 통한 분양 수익 극대화를 기대한 건물 소유주들이 극렬하게 저항하면서 쪽방촌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를 지어라"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 같은 현수막이 쪽방촌 건물을 뒤덮었다. 정권이 바뀌고 책임자들은 교체됐고 당국은 뒤로 숨었다. '희망'이 '희망고문'이 된 것이다.

책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는 정비사업 발표 이후 2년 동안 동자동 쪽방촌을 둘러싼 행위자들의 정동과 역동을 입체적으로 추적한 현장보고서다. 빈곤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지난해 1학기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수강한 학생 26명과 함께 썼다. 이들은 "주거권 실현에 연대의 마음을 보태고 싶어서" 책을 펴냈다고 한다. 사업이 표류하는 동안 동자동에서는 60명의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ㆍ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지음ㆍ글항아리 발행ㆍ256쪽ㆍ1만6,000원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ㆍ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지음ㆍ글항아리 발행ㆍ256쪽ㆍ1만6,000원

이혜미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