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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잔혹 폭행에 스러진 25세 프로그래머... '파타야 살인사건' 8년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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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피해자 어떻게 죽이셨나요?"(기자)
"제가 죽인 거 아니에요. 모르면 찍지를 말든가. XX."(김씨)
"유가족한테 할 말 없으신가요?"(김씨)
"(비웃음)"(김씨)
2018년 4월 5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파타야 살인사건' 주범 김모(39)씨가 양손이 포승줄에 묶인 채 경찰관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취재진을 시종일관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봤고, 호송차에 탈 때까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청춘의 꿈을 부여잡고 태국으로 향했던 프로그래머 임모(사망 당시 25세)씨가 파타야에서 살해당한 지 8년이 지났다. 김씨와 공범 윤모(40)씨는 임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고 최근에야 1심에서 각각 징역 17년과 14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에 대한 항소심은 아직 진행되고 있다. 임씨는 왜 파타야에서 목숨을 잃었고,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던 걸까. 그리고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파타야의 비극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그해 3월부터 태국 방콕에서 도박사이트를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도박사이트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소수의 직원만 고용하고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지인을 통해 임씨를 소개받았다. 김씨는 임씨에게 월 600만 원을 주고 불법 도박사이트 통합관리시스템 개발을 맡겼다.
김씨는 같은 해 9월 시스템 개발이 지체되자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합숙을 하자"며 임씨와 웹디자이너 A씨를 태국 방콕 사무실로 불렀다. 김씨는 비행기 티켓과 체류 비용 지원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수익도 모자라 해외 근무까지. 부풀었던 임씨의 꿈은 태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무참히 깨졌다. 김씨는 "개발이 여전히 느리다"며 임씨를 매일 밤낮없이 폭행했다. 주먹질을 하고 발로 걷어차는 건 예삿일이고, 라이터로 머리를 찍어 두피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임씨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같은 해 10월 A씨와 함께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은 출국 전 공항에서 김씨 일당에 붙잡혔다. A씨는 이후 재차 탈출을 시도해 성공했지만, 임씨는 그렇지 못했다. 김씨는 A씨의 도피로 발각될 것을 우려해 사무실을 방콕에 있던 윤씨 주거지로 옮겼다.
김씨는 거처를 바꾼 뒤에는 "도박사이트 회원정보와 베팅 내역을 친구들에게 빼돌렸다"며 임씨를 폭행했다. 때로는 윤씨도 임씨를 때렸다. 무자비한 폭력에 임씨의 몸은 멍으로 가득해졌고, 머리와 양쪽 귀는 찢어져 고름이 나올 지경이었다. 치아도 부서졌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임씨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했다.
11월 19일. 김씨와 윤씨는 "도박사이트 운영 수익을 빼돌렸다"며 야구방망이와 전깃줄로 임씨를 폭행했다. 이들의 분노는 몇 시간쯤 뒤 임씨가 친구들에게 숙소 위치를 전송하고 수사기관에 신고를 부탁한 사실까지 알게 되자 극에 달했다.
두 사람은 방콕에서 파타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내내 임씨를 폭행했다. 전기 충격기로 임씨의 신체를 지지는가 하면, 흉기로 손톱을 빼버리는 등 끔찍한 폭행이 반복됐다. 이들은 최소 두 차례 임씨를 차량에서 내리게 해 야구방망이로 머리 등을 수십 차례 때리기도 했다. 김씨와 윤씨는 빈사 상태에 빠진 임씨와 파타야의 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임씨를 살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리조트 입실 첫날 임씨를 차량에 방치해둔 채 마약을 했다. 리조트에서 나온 뒤엔 서로에게 임씨를 떠넘기려고 했다. 윤씨는 냅다 도망쳤고, 김씨는 리조트에 주차해둔 차량 뒷좌석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씌워놓은 임씨 사체를 방치해두고 현장을 떠났다.
2015년 11월 21일 오후 7시. 사망 추정 시간인 20일 오전에서 하루 넘게 지나 발견된 임씨의 부검 결과는 참혹했다. 갈비뼈 9개가 골절됐고, 왼쪽 폐는 찢겨 있었다. 주요 장기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사인은 뇌부종이었다. 김씨와 윤씨가 둔기로 머리를 때린 게 죽음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이란 얘기였다.
두 사람은 임씨 사망으로 갈라섰다. 김씨는 11월 21일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윤씨가 숙소에서 임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자고 했다"는 취지의 전화를 남기고 베트남 호찌민으로 도주했다. 지인들을 통해 임씨의 국내 거주지에 있는 컴퓨터 본체를 버리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고도 했다.
윤씨는 김씨에게 함께 자수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혼자 파타야 경찰서를 찾았다. 파타야 지방법원은 2016년 10월 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윤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윤씨는 법정에서 "김씨가 임씨를 심하게 폭행했고 나는 리조트에 도착해서야 일어나지 않는 피해자를 툭툭 친 게 전부"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의 도주극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김씨가 2018년 3월 베트남에서 체포돼 4월 국내로 송환된 것이다. 검찰은 같은 해 5월 공동감금 등 혐의로 김씨를 재판에 넘겼고, 10월 살인과 사체유기 등 혐의로 김씨를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공동감금과 살인 혐의를 병합해 심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기각했다. 살인 혐의 재판이 시작될 무렵 공동감금 혐의 재판은 심리가 다 끝났기 때문에 병합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였다.
임씨 사망 3년 만에 국내에서 본격 시작된 김씨의 재판. 그러나 진실은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김씨는 "마약 복용으로 사리분별이 어려웠던 윤씨가 임씨를 살해했다"며 "나는 2015년 11월 초부터는 임씨를 폭행한 사실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태국에 수감돼 있던 윤씨는 2020년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임씨 사망의 책임을 김씨에게 떠넘겼다.
법원은 김씨와 윤씨가 공모해 임씨를 살해했고, 주범은 김씨라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윤씨가 있는 곳에서 임씨를 때릴 수 없다"는 김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가 파타야 거주지에 있던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거울로 다가가 얼굴을 보는 반면, 윤씨는 가장자리에 서서 층수 버튼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등을 고려하면 위계질서가 명확하게 확립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씨가 임씨를 폭행했다"는 김씨 주장도 기각됐다. 재판부는 "김씨는 방콕에서 파타야로 이동하던 중에 윤씨가 커피 한 잔을 가져다줬다는 매우 세부적인 내용은 진술하면서도, 임씨가 사망 당일 당한 피해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선 답변을 회피했다"며 "윤씨가 파타야 이동 과정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임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폭력은 김씨가 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씨 사망 이후 허위신고도 김씨가 주범이란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결백하다면 윤씨가 임씨를 파타야 숙소에서 살해했다고 거짓말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혐의가 없다고 주장하는) 김씨가 윤씨의 자수 제안을 거절한 채 베트남으로 도주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체유기도 유죄로 인정했다. 김씨는 "임씨의 사체를 옮기자는 윤씨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임씨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서도 사체를 차량 뒷좌석에 하루 이상 방치한 점에 비춰보면, 임씨의 장례를 치러주거나 사체 감호 의무가 있는 김씨에게 사체유기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1년 2월 내려진 1심 결론은 징역 17년에 불과했다. "김씨는 장기간에 걸친 폭행으로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데다 범행을 은폐해 비난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계획적이거나 확실한 고의로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2019년 12월 임씨를 감금하고 폭행한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 확정 판결을 받은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태국 국왕의 사면을 받고 외국인 추방 대기소에 있다가, 지난해 4월 국내로 송환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씨도 올해 3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윤씨도 김씨와 함께 폭행을 가담하면서 임씨를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폭행 정도가 경미했고 임씨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적도 없다"는 윤씨와 김씨의 달라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①김씨와 윤씨가 김씨의 1심 재판에서 폭행에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공통적으로 지목하기 어려운 야구방망이와 전기충격기 등을 언급했고 ②서로에게 임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 폭행 강도 등을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지인을 통해 국내에 송환된 윤씨에게 연락한 사실에 대해서도 "말을 맞췄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주범은 김씨"라는 기존 판단에도 불구하고 "윤씨도 살인죄의 죄책을 면제받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윤씨도 ①2015년 10월부터 김씨와 함께 또는 혼자서 임씨를 상습 폭행했고 ②파타야 이동 과정에서도 임씨를 폭행했고 ③수사기관에 김씨를 신고하거나 구호조처를 강구하기는커녕 시체 처리방안을 논의한 점을 종합하면 살해의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결국 윤씨에게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①임씨 살해의 가담 정도가 김씨보다는 낮고 ②우발적으로 살해한 점을 참작한 것이다. 재판부는 "윤씨가 자수했기 때문에 범행에 대한 수사 및 임씨의 시신 발견이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참작 사유도 내놨다. 결국 범행이 잔혹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계획적이지 않았던 점이 김씨와 윤씨의 형량이 징역 20년도 안 나온 이유였다. 재판부는 징역 14년 판결이 확정되면 태국에서 복역한 4년 6개월은 옥살이에서 빼라고도 했다. 국내에서는 9년 6개월만 징역살이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1심 판결에 항소했다. 김씨와 윤씨에 대한 항소심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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