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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네

입력
2023.03.30 15:37
수정
2023.03.30 18: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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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현ㆍ윤미숙의 인권 그림책 ‘만약에 내가’

노란생, 빨간색, 검은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강렬한 삽화가 책의 특징. 고압적인 왕, 복종하는 병사, 위기에 처한 나의 입장을 다양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풀빛 제공

노란생, 빨간색, 검은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강렬한 삽화가 책의 특징. 고압적인 왕, 복종하는 병사, 위기에 처한 나의 입장을 다양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풀빛 제공

책은 첫 장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황금빛 왕관을 쓴 왕은 고압적 자세로 명령한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왕은 전쟁을 피해 도망쳐 온 피란민을 쫓아낸다. “다른 나라 전쟁은 우리와 상관없다.” 이어 발이 큰 사람과 장애인, 노인을 몰아낸다. “우리와 다르고 일을 못하니 쓸모가 없다”.

주인공은 발이 크지도 않고, 장애인도 노인도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느 날 왕의 병사들은 주인공을 잡으러 온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며 주인공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만약에 내가 잠자코 있지 않았다면, 병사들에 맞서 줄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내가.”

아이들에게 장애, 난민, 고령화, 다문화 등 복잡한 문제를 꼭 알려줘야 할까. 국어ㆍ영어ㆍ수학을 가르칠 시간도 부족한데. 내 아이는 그런 차별을 받을 리 없는데. 그런 생각에 빠질 때 이 책은 ‘정의로운 사회’,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명징하게 알려준다. “우리 주위에 도사린 차별은 언제가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진실 말이다. 독재자 왕, 명령에 복종하는 병사, 핍박받는 사람 등 등장인물의 다양한 입장을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책의 장점이다.

만약애 내가 다른 사람의 차별과 핍박에 저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애 내가 다른 사람의 차별과 핍박에 저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에 내가ㆍ장덕현 글ㆍ윤미숙 그림ㆍ풀빛 발행ㆍ36쪽ㆍ1만4,000원

만약에 내가ㆍ장덕현 글ㆍ윤미숙 그림ㆍ풀빛 발행ㆍ36쪽ㆍ1만4,000원


단순하면서 인상적인 삽화, 강렬한 색상, 군더더기를 걷어낸 문장이 ‘인권’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작가들의 내공에 힘입은 바 크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에서 일한 장덕현 작가가 글을, ‘팥죽 할멈과 호랑이’ 등으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인 볼로냐 라가치 상을 두 번 받은 윤미숙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려는 게 작가들의 의도였다면, 성공적인 작품이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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