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사흘간 1차로 진행된 저소득·저신용자 '소액 생계비 대출' 상담 예약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원래 다음 주 상담할 인원만 모으려던 서민금융진흥원은 신청 첫날 몇 시간 만에 정원(6,200명)이 차는 바람에 한 달치 상담 예약을 받는 걸로 급히 계획을 바꿨다. 연 15.9%(성실 상환 땐 최저 9.4%) 고금리에 50만 원(1년 뒤 100만 원까지 증액 가능)만 빌릴 수 있어 "정책금융 치고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마저 절실한 이들이 많은 것이다. 우리 사회 경제적 약자의 형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고금리·고물가 여파가 저소득·저신용 계층부터 직격하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제 나온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고위험가구'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재작년 101.5%에서 지난달 116.3%로 급증했다. 100만 원을 벌면 부채 상환에 116만 원을 쓴다는 얘기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내고 있는 셈이다. 반면 고금리에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금융기관은 이들 취약계층 대출부터 죄고 있다. 지난해 저신용자가 5대 시중은행에서 받은 신용대출은 전년 대비 25%에 불과했고, 이들의 '급전 창구'였던 카드론도 43%나 줄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취약계층은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기 쉽다. 법정 한도(연 20%)를 무시한 고리 사채, 알몸 사진까지 담보로 요구하는 무자비한 추심이 횡행하는 재기불능 지대를 방치하면 사회 전체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생계비 대출도 불법 사금융 진입을 막기 위한 조치이나, 지금의 경제 상황을 감안한다면 보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채무 조정, 취업 지원 등을 병행해 정책 실효성도 높여야 한다. 은행권은 이번 대출 사업에 3년간 매년 500억 원씩 기부하기로 했는데, 고금리 국면 덕에 큰 수익을 내고 있는 만큼 출연 규모 확대를 검토해볼 만하다. 금융취약층 지원을 통한 금융시스템 안정은 결국 은행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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