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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선동 언론'은 어떻게 조선을 왜곡, 조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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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군이라는 자는 하나의 늙은 무당이라. (...) 오직 야만에서 깨어나지 못해 그런 무리의 혹하는 바가 되는지라. 이제 조선은 바야흐로 문명의 운수를 향하는 지점에서 그런 요악한 무녀배의 횡행을 용납지 못하게 할 것이어늘... 어찌 다시 성중에 들어와서 그 요술을 부릴 수 있으리오."
'한성신보'의 1895년 9월 9일 자에 실린 기사 중 일부. 이 신문은 조선 왕실이 요사스러운 무속 신앙에 빠져 있으며, 명성황후가 무속에 빠져 국왕을 현혹시켜 재정을 파탄 낸 주범이라고 여러 차례 보도했다. 어디 그뿐인가. '야만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대목에서는 조선을 멸시하는 시각이 표표히 흐른다.
황후가 무당에 의존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순종을 위해 '진령군'이라는 무속인을 궐로 불러들이고, 전국 명산을 다니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이 단편적 면모만 있으리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쓴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은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고전을 두루 암기할 정도"라 표현했고, 황후의 어의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는 "진보적이고 유능한 외교가"라 평가했다. 왜 이리 극단을 달리는 걸까.
책 '한성신보가 기획한 근대 한국의 표상'은 일제 관변신문인 '한성신보(1895~1906)'가 근대 조선의 인물과 사건을 어떻게 왜곡, 조작해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을 보조하는 정치적 동원 도구로 활용되었는지를 면밀히 살핀다. 고종 전문 연구자인 저자는 방대한 사료를 토대로 큰 틀에서 고종,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등 당시 국왕 일가에 대한 묘사, 아관파천과 을미사변, 김홍집 살해사건, 의병 봉기, 러일전쟁 등 굵직한 사건에 대한 이 신문의 보도 태도를 분석한다.
신문은 태생부터 '저널리즘'과 거리가 멀었다. 일본 우익 세력인 구마모토 국권당이 창간 주축이 됐다. 기자들도 낭인으로 꾸려졌다. 침략성을 은폐하고 하등국에 은혜를 베푸는 나라라는 일본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동시에, 조선을 내내 무시와 경멸의 시선으로 그렸다. 심지어 같은 호의 국문판과 일문판의 기사 종류와 내용을 달리 보도하기도 했다. 독자를 구분해 조선 내 반일여론이 확산하지 않도록 차단하고 정부의 무능함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 상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축소 보도하는 식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에 맞춰 국내 여론을 형성해나가기 위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황후 시해 사건에 직접 관여한 신문의 주요 인사들은 사안을 은폐하기까지 한다. "궁중에는 온갖 폐단이 난무해 당장 쇄신하지 않으면 장래를 장담하지 못할 형세"라며 고종의 국정 운영 능력을 비하하며 이미지를 조작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인물로 대원군을 부각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이미 시해 당한 뒤 황후의 시신이 불태워진 후임에도 "소재를 알 수 없다"며 명확한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황후답지 않게 도망쳐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피란설을 제기하며 끝까지 황후를 사라져야 할 '원흉'으로 몰아갔다.
정치 선동 도구로 전락한 저널리즘의 맹위는 매섭고 생명은 질겼다. 명성황후는 100년 가까이 '민비'라 낮잡아 불리며 '집안을 망친 암탉'으로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가 정치 외교적 감각을 가진 총명한 여성으로 재탄생한 계기는 1995년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 발표에 이르러서였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한일 정상회담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언론 평가가 대표적 예. 첨예한 현안을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불편부당에 앞서 이해득실의 잣대를 들이대며 '편 가르기'에 매진하는 언론(인)은, 100여 년 뒤 역사가 '한성신보'를 기록한 시각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좋겠다.
책은 학술연구를 기반으로 하지만 근현대사에 깊은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힌다. 아마 영화보다 더 극적인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논의의 중심에 있어서리라. 다만 저자가 한성신보를 소재로 쓴 여러 편의 논문을 재구성해 펴냈기에, 각 장마다 반복된 논의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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