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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보름달인가?

입력
2023.03.16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NASA의 설명문과 당시 사진(오른쪽). 자료: 나사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NASA의 설명문과 당시 사진(오른쪽). 자료: 나사

1990년 2월 14일, 성간 우주로 향하던 보이저 1호가 카메라를 태양 쪽으로 돌렸다. 60억㎞ 반대편의 태양과 지구를 찍었다. 사진은 보이저 계획을 주도하던 칼 세이건에게 전달됐다. 세이건은 건네받은 사진에 묻은 먼지를 지우려다, 깜짝 놀랐다. 먼지가 아니라 사진에 찍힌 작은 점이었고, 그건 지구였다. “인류가 아는 모든 영웅, 모든 종교와 심오한 사상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속에 있다”고 적었다.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려면 틀을 깨고 나아가 바깥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억울하게 죽은 백제 무속인이 나온다. 의자왕 20년 6월, 큰 거북이가 발견됐다. 등껍질에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름달은 가득 찼으니 곧 기운다는 것이요, 초승달 신라는 점점 커진다는 뜻”이라고 말하자, 의자왕은 무속인을 바로 죽였다. 의자왕이 ‘잘나갈 때 미리 개혁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았다면, 무속인도 죽지 않았고 백제도 멸망을 피했을지 모른다.

□개도국이던 1990년대까지 우리의 대외브랜드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1885년 퍼시벌 로웰이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내린 ‘활력 없는 은둔의 나라’라는 평가를 은연중 수용한 것이었다. ‘조용한 개도국’에서 ‘다이내믹 코리아’가 대한민국 브랜드가 된 건 2002년이 되어서였다. 강력한 구조개혁으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한일 월드컵이 열린 그해는 개방과 역동성이 넘치고 창조적 파괴가 대세였다.

□2023년 대한민국은 어디에 섰나. 강력한 제조업과 문화 파워에도, 인구 감소와 독재자가 된 시진핑 중국의 일방주의가 위협한다. 백제 신세를 면하려면 20년 전 역동성이 필요한데, 윤석열 대통령은 새 대일관계 구축을 그 맥락에서 파악한다. 16일 방일을 둘러싸고 나라 안팎 여론은 엇갈린다. 감정적 앙금이 여전한 국내에선 부정 정서가 높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략적 위상이 커지고, 새로운 글로벌 가치사슬 구축에서 국익을 챙기게 될 것이라고 반긴다. ‘창백한 푸른 점’의 한 귀퉁이, 우리 미래에 대한 전망도 외부에서 볼 때 더 정확하길 희망한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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