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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사랑한 이것, 정조는 돈벌이 수단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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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바라옵건대 우리 거룩한 임금께서는 건공탕(建功湯)을 거두지 마시옵소서."('건공가'의 첫대목)
1773년 80세의 영조는 정범조에게 건공탕을 주제로 시를 지어 올리게 한다. 건공탕은 영조의 건강을 지켜 준 약으로 영조가 직접 이름도 하사했다. 영조는 69세부터 하루 두 번 먹던 건공탕을 세 번으로 늘렸다. 이 약의 핵심 재료는 바로 인삼이었다. 그렇게 영조가 매일 먹은 건공탕으로 소비된 인삼만 1년에 20여 근(약 12㎏). 근검절약하며 관복을 해질 때까지 입었다는 영조조차 인삼 앞에선 누구보다 사치스러웠던 셈이다. 인삼 덕분일까. 영조는 83세까지 장수하며 52년간 권좌를 지켰다.
영조에 이어 정조는 어땠을까. 정조는 인삼을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조는 1797년 포삼제를 실시했다. 포삼이란 인삼을 찐 홍삼으로, 정부가 공인한 청(淸)과의 홍삼 무역제도를 포삼제라 불렀다. 정조는 홍삼 밀무역을 막을 수 없다면 역관에게 홍삼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하고, 대신 세금을 부과해 외교 비용을 충당하기로 결심한다. 신간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이 인삼이라는 프레임으로 짚어낸 한국사의 단면이다.
책은 인삼 문화사를 세계사적 관점으로도 조명한다. 자녀가 무려 142명이던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개혁 군주 민 망 황제의 곁에 늘 고려인삼이 있었다는 사실이나 아편전쟁 직후 아편 해독에 인삼이 효과적이란 이유로 홍삼의 중국 수출량이 두 배로 뛰었다는 사실 등이다. 사료를 바탕으로 인삼을 중심으로 한 37개의 이야기를 엮은 미시사다. 지역 연구의 일환으로 인삼문화사 연구를 시작해 인삼의 고장인 개성과 금산 등 자료 수집과 연구에 공을 들였던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톺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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