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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웠던 밥벌이, 로봇이 대신한다면 기쁠까

입력
2023.03.14 04:30
수정
2023.03.14 13: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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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 (긋닛 3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2018년 3월 인천공항 활주로 인근 조류 서식지역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조류퇴치전담팀 직원들이 조류 퇴치를 위해 개발된 드론 활용을 시연했다. 연합뉴스

2018년 3월 인천공항 활주로 인근 조류 서식지역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조류퇴치전담팀 직원들이 조류 퇴치를 위해 개발된 드론 활용을 시연했다. 연합뉴스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연일 화제였던 어느 날. 정부 기관장 취임과 같은 인사 소식을 3,4문장으로 전달하는 단신 기사 정도는 AI가 작성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이름과 직책만 적어 넣고 기사 작성을 요구하니 챗GPT의 마감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음에도 놀라웠다. 사소한 일, 가끔은 귀찮은 일로 여겼던 업무를 AI가 대신할 시대가 정말 왔구나 체감하는 순간, 기대보다는 헛헛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제와 같은 오늘.' '카드값 때문에...' 등 말그대로 '밥벌이'를 하는 일상인들의 흔한 넋두리다. AI, 로봇의 진화는 지겨운 그 노동을 다각도에서 사유하게 한다. 계간 '긋닛' 3호에 실린 민병훈의 단편소설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대신할 로봇의 등장을 마주한 공항 조류퇴치반 직원들을 통해 그 지점을 파고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소설 속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깊게 이입된다.

주인공 '나'는 항공 사고 예방을 위한 조류퇴치반 직원이다. 허공에 총을 쏴서 활주로 근처 새들을 쫓아내는 일을 한다. 총을 견착하는 오른쪽 어깨에 피딱지가 생길 만큼 바쁘다. 나는 "아무런 성취도, 보람도 느낄 수 없"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면서도, 퇴사 생각이 들 때면 15년차 팀장님의 목소리도 떠오른다. "그런 걸 느껴야 돼? 그렇다고 급여를 포기한다고?"

평온하고 무료한 주인공의 일터는 로봇 매 '팔콘'의 등장으로 시끄러워진다. 인간이 몇 시간이 걸릴 업무를 단 5분 안에 해결하는 로봇. 개발 막바지 시범 운영을 하자 조류퇴치반 직원들은 일시적으로 근무시간이 3분의 2로 줄고 급여도 삭감된다. 직원들을 당황시킨 건 오히려 갑자기 생긴 여가 시간이었다.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등록하거나 부업을 하는 이가 생겼다. "잉여가 된 시간을 잉여인 채"로 둘 수 없는 이들의 몸부림이다.

민병훈 작가.

민병훈 작가.

로봇도 사람도 새 체계에 적응하던 가운데 일이 터진다. 퇴치반 막내 직원이 쏜 총이 팔콘을 맞춰버렸다. 고의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징계를 받자 팀장과 주인공이 대신 공항노동조합을 찾아가 동료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쌓여있던 불안, 좌절 등의 감정이 터져나온 것이다.

여러 한계를 보여준 '팔콘'은 결국 공항에서 사라지지만 '나'는 달라졌다. 팔콘이 활약하면 "결과가 훤히 보이는 일, 어제가 오늘 같지 않고 오늘이 내일 같지 않은 일, 그런 일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하며 막연한 새 출발의 기대감을 품었던 그였지만 이제는 "지난날에는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감각하"며 다시 총을 든다.

작가는 이 소설의 출발점이 "인간 스스로 자신의 노동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일을 기계가 대신 할 때 인간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라는 질문이라고 밝혔다. 여러 복잡한 감정 중에서도 위협감은 우리가 우리 노동의 가치를 생계, 그 이상으로 여기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대표 월급쟁이 같던 소설 속 팀장이 "여객기가 저기서 잘 오르고 내리면, 오늘 아무일도 없구나, 다행이다"하는 자신의 자부심을 슬쩍 꺼내놓는 대목에 시선이 머문다. 쑥스럽지만 우리도 내심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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