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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이 치매노인 관리까지... 日 편의점은 고령사회 비추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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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한국은 고령화 과정의 최종단계인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합니다. 고령자도 경제활동의 중요 주체가 돼야 하는 인구구조죠. 하지만 외국어가 난무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지배하는 국내 서비스 업장은 어르신에게 너무 불친절한 곳입니다. 소비활동의 주축이 될 고령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환경을 만들 순 없을까요? 한국일보가 어르신의 고충을 직접 듣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어르신 친화 서비스’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봤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어쩌다보니 고령 은퇴자가 많아진 동네. 영어로 '노크'(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NORC)라 불린다. 처음부터 고령자 전용 주거지로 설계된 게 아니라, 한때 젊었던 주민들이 계속 살면서 그대로 황혼에 접어든 결과가 노크다.
지난달 25일 찾은 일본 지바(千葉)시가 바로 그런 예다. 반세기에 걸쳐 서서히 '황혼의 도시'로 향해가는 곳이다. 지바에선 전철로 1시간 정도면 도쿄 중심부로 접근할 수 있어, 1970년 전후부터 대규모 주택단지가 건설됐다. 도쿄의 회사를 향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20세기의 직장인들은 어느새 이곳에서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지바시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6.3%다.
지바에서 고령층을 위한 특별한 편의점을 만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쿄역행 열차를 탈 수 있는 이나게카이간(稲毛海岸)역 앞 로손 간판에는 빨간색 글자로 개호상담소(介護相談所)라고 쓰여있다. 개호는 한국식으로 풀이하면 간병이나 돌봄. 노인용 돌봄 상담소가 들어선 이 특별한 편의점은 1976년에 건축된 1,800세대 규모의 공공임대아파트 상가에 입점해 있다. 아파트 관계자는 "주민들 중 은퇴한 노인들이나 도쿄로 출퇴근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주민 구성이 이렇다 보니, 로손 근처에선 보행기를 끌거나 지팡이를 짚고 편의점 쇼핑을 하는 아파트 주민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일본 편의점 업계 3위인 로손은 2015년 4월 고령 소비자에게 개호보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로손' 1호점을 도쿄 인근 도시 가와구치(川口·사이타마현)에 열었다. 한국으로 치면 편의점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 상담을 해주는 셈이다. 케어로손에선 보험 상담뿐 아니라, 간편조리식, 성인용 기저귀 등 고령 소비자가 필요한 품목을 더 많이 판매하고, 노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행사도 마련한다. 현재 일본 전역에 20여 개 케어로손 점포가 운영된다.
로손 앞에서 만난 미즈사와 히로시(75)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로손을 방문해 먹거리와 물, 담배 등을 구입한다고 했다. 500m 거리에 쇼핑센터가 있지만 미즈사와씨는 편의점 쇼핑을 선호하는 편이다. 조리법이 간편하고 소량 포장된 식료품 쪽에서는 오히려 편의점의 경쟁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 살다보니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며 "편의점에서 냉동식품을 구매해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편이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주민인 와타카베 요시미(79)씨 역시 일주일에 두 번 주기적으로 로손을 찾는다. 와타카베씨도 "사는 곳 바로 앞에서 음식을 살 수 있어 편리하다"면서 "빵과 계란은 꼭 편의점에서 산다"고 말했다.
고령 소비자 입장에서 케어로손은 소비와 복지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종합센터에 가깝다. 편의점 안쪽에 들어서면 로손과 제휴를 맺은 보험사 소속 사회복지사가 상담 창구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근육강화 운동교실 △방문간호사와의 건강상담 및 간단한 건강검진 △화단 만들기 교실 등을 운영한다. 지역 커뮤니티, 경로당, 보건소를 합친 역할과 흡사한 셈이다.
이날 신문을 사기 위해 로손을 찾은 A(77)씨는 상담 창구에서 입원 중인 지인의 고민을 대신 물었다. A씨는 "친구가 상급병원으로 옮기려 하는데 절차를 잘 모른다"며 "편의점에 상주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니, 상급병원으로부터 소견서를 받아보라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집 근처에 이런 시설이 있어 간단한 상담을 하기에 유용하다"면서 "평소 편의점에서 운동을 배우는 노년층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와 상담을 나눈 사회복지사 B씨는 "주로 70, 80대 어르신들이 찾아와 개호보험 혜택을 받는 방법을 문의하거나, 40, 50대 자녀세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의 부양 방안을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적보험 광고나 가입 권유는 전혀 하지 않고, 관련 선전책자(팸플릿)도 갖다 놓지 않았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일본에선 아르바이트생도 편의점을 방문하는 치매노인을 관리한다. 근무 중에 치매노인이 오면 그 사실을 근무일지에 기록해 뒀다가, 교대 근무자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업계 1위 세븐일레븐의 경우 회사 차원에서 직원에게 치매노인 응대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던 지바의 로손 편의점에서도, 최근 식사를 하던 할머니에게서 기저귀 냄새가 많이 나 아르바이트생이 이를 지역 보건 담당자에게 알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편의점이 고령 소비자에게 파고드는 전략은 브랜드마다 다양하다. 업계 최강자 세븐일레븐은 배달을 특화시켰다. '세븐 라쿠라쿠(편안한) 배달'은 전화로 주문하면 집까지 물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쇼핑권에서 소외된 지역 주민들도 신선식품이나 필수품을 살 수 있도록 이동식 점포를 여는 '세븐 안심 배달'도 하고 있다. 주민들은 150여개의 물품이 실린 소형 트럭이 지역을 방문할 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 '세븐밀'로 불리는 간편식 배달 서비스도 혼자 살거나 둘이 거주하는 고령자들에게 직접 쇼핑하거나 요리를 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온라인이나 전화를 통해 주문할 수 있고, 집으로 음식을 받거나 편의점에서 수령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객 응대법도 다르다. 세븐일레븐 본사인 세븐&아이홀딩스는 직원들이 '치매 환자 도우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계열사별로 강좌를 열고 있다. 세븐일레븐 측에 따르면 그룹 계열사에서 이 교육을 이수한 직원은 2021년 기준 3만 8,000명에 달한다.
일본 편의점의 변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고령 소비자가 늘고 가구수가 주는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세븐&아이홀딩스는 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2060년까지 전체 인구는 9,000만명 이하로 감소하고 고령자 비율이 40% 가까이가 될 것"이라며 "신선신품과 고기를 파는 슈퍼마켓에 걸어 갈 수 없는 독거노인의 숫자는 2030년에 2배로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촘촘했던 사회·경제 인프라가 고령화 탓에 붕괴되는 현상에 맞서 편의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도시에서 홀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은 그 지역의 '등대'에 비유되기도 한다.
한국 편의점도 고령자를 타깃으로 삼은 일본 편의점 업계의 진화를 주시해 왔다. 그러나 아직 적극적인 변신을 시도하기에는 고령자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게 국내 회사들의 판단이다. 일본은 2006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29.1%에 이른다. 한국은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65세 이상 인구가 17.5%에 머물러 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어르신들이 편의점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층은 아닌 상황"이라면서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해 성인용 기저귀를 점포에 배치하거나, 씹기 좋은 음식을 개발하고 있지만 시장 규모가 크진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 편의점이 평균 40평 정도의 대형 점포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한국 편의점은 유동인구가 많고 임대료가 높은 곳에 20평 대의 소규모 점포를 내는 것도 차이점이다. 더 다양한 품목을 배치하고, 소비자를 위한 부가서비스를 운영하기에는 면적이 작아 한계가 있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편의점이 초고령사회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면 소형 점포를 많이 출점시키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에서 점포를 특화시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회> 일본은 어르신 고객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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