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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써 내려간 조현병에 맞서 걸어온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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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남 진주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범인 안인득의 조현병 진단 이력이 집중 조명됐다. 정신질환 치료제도의 허점이 도마에 오른 한편, 일각에선 '조현병=범죄자'란 편견의 언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졌다.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1.4%, 대검찰청 2016년)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정신장애인의 범죄율(0.1%)만 봐도 틀린 얘기다. 심지어 정신장애 일부인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그보다도 훨씬 낮다. 그럼에도 공고한 차별적 시선은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신간 '조율하는 나날들'은 대만계 미국인 작가 에즈메이 웨이준 왕(40)이 조현병에 시달려 온 삶을 진솔하게 써낸 에세이다. 책은 전 세계 100명 중 1명꼴로 발생할 정도로 흔한 질환인데도 철저히 외면받고 배제당해 온 조현병에 대한 오해들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특히 당사자의 직접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조현병을 보여준 매우 드문 글이라 미국 문단에서는 더 주목받았다. 출간된 해(2019년)에 미국 주요 매체 20여 곳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조현은 '줄(현·絃)을 적절히 조절한다(조·調)'는 뜻이다. 조율이 잘못되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현악기처럼, 뇌기능 회로(줄) 이상으로 환각 현상 등을 겪는 혼란한 상태를 표현한 단어다. 의학계에서는 조현병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질환으로 본다. 왕은 조현정동장애(조현병 증상과 우울증 등이 같이 나타나는 질환) 진단을 받았다.
이 책의 힘은 내밀한 개인 서사와 사회적 의제가 단단히 붙어 있다는 점이다. 조현병 진단 과정부터가 그렇다. 2001년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고 20대 초반이던 2005년 조현병 주요 증상인 환청을 경험했지만, 8년 후에야 담당의에게 공식적 진단을 받는다. 그사이 증세는 나빠졌고 새 의사를 만나야 했다. "그녀(의사)가 나를 기분·불안장애라는 흔한 영역으로부터 조현병이라는 정글의 세계로 공식적으로 편입시키는 데 조심스러웠던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책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낙인찍힐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이 환자도 의사도 조현병 진단을 꺼리고 결국 치료 공백이 생기게 만드는 현실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정신병동 입원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예일대로부터 퇴학당한 경험도 정신질환을 겪는 학생을 위한 대학 시스템의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또 정신의학의 바이블 DSM(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기준)에 따른 진단과 그 한계점,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자발적 치료 논쟁 등 여러 이슈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사회도 맞닥뜨리고 있는 주제들이다.
낯선 의학 용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매우 구체적인 설명과 증상 묘사가 이해를 돕는다. 예컨대 '현실, 영화'장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신증 상태를 생생하게 전한다. 왕은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같이 있던 남편에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일이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것이냐'고 물어본다. 순간적으로 허구와 현실을 나누는 개념을 완전히 상실해 혼란에 빠진 것이다. 혼란은 모든 감각에서 벌어진다. 무언가를 '본다'거나 '듣는다'는 자신의 감각조차 신뢰할 수 없다고 작가는 표현한다.
왕은 조현병을 미화하지도 연민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힘껏 진실하게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할 뿐이다. 메시지는 명료하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환자이지만, 나도 그저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 예일대 입학과 스탠퍼드대 졸업, NPR '최고의 책' 선정작(소설 '천국의 국경', 2016) 집필과 같은 화려한 이력들도 이를 부단히 증명하려 애쓴 결과물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총 마흔한 번을 거절당하고 겨우 출간된 이 책도 마찬가지다. 평생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도 거절당하면서도 버티고 또 걸어 온 작가의 삶이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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