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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전쟁, 우크라이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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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뉴스룸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꼽힌다. 1,000만 명 이상의 전사자, 1억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스페인 독감, 악몽 같은 참호전으로 기록된 탓이다. 과학혁명과 제국주의로 잉태된 대전의 불씨는 냉전시대를 거치고 20세기 말에야 잦아들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시도(해퍼드 매킨더·심장지대)라고까지 불렸던 현대전의 전형은 그러나 세기를 넘기며 다시 경악할 실체를 드러낸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다.
2년째를 맞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래저래 1차 대전과 닮았다. ①대리전이라는 면에서 우선 그렇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로 촉발된 1차 대전은 당초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이었지만 이내 각각의 뒷배였던 독일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했다. 우크라이나전에선 러시아와 중국 간 공조가 단단해지고 있고, 미국은 파병만 안 했을 뿐 우크라이나와 사실상 같은 전선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7일 "보이지 않는 손"을 운운하며 미국의 포석을 비난하자 크렘린궁은 바로 같은 말로 맞장구쳤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실은 G2가 맞서는 전선이 명징해진 장면이다.
② 팬데믹과 경제 위기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1차 대전의 참호들은 스페인 독감을 전 세계로 퍼트린 거대한 배양접시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중 발발한 우크라이나전은 1세기 전 세계대전 후 따라온 대공황과 비할 만한 경제 대란의 위기로 세계를 몰아넣었다. 전염병과 전쟁이 최악의 불황을 불러내던 오랜 공식을 인류는 거듭 증명하고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③ 장기전 국면 돌입과 막대한 확장성이다. 1차 대전의 당사국 위정자들은 개전 초반 전면전을 원하지 않았지만 4년을 이어가며 30개국이 뛰어든 대전쟁(The great war)으로 확대했다.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이 응축했던 에너지가 터진 결과였고, 미국의 참전이 늦었다면 몇 년을 더 갔을지 모를 일이다.
러시아의 전략 실패와 유럽 에너지난으로 첫겨울을 넘기지 않으리라 예상됐지만, 우크라이나전은 1차 대전과 유사하게 확장하며 장기전 국면으로 진입하는 추세다. 특히 8개월간 대치로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바흐무트 공방전은 무자비하고 지루한 참호전으로 이어져 이러한 국면을 부추긴다. 애브릴 헤인스 미 국가정보국 국장은 8일 바흐무트를 거론하며 "러시아가 점령지를 방어하는 전략을 꾀하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전은 필연적으로 전쟁의 유관 국가를 늘린다. 자원이 바닥난 독일군이 무리하게 제해권을 노리다 미군을 끌어들인 1차 대전처럼 말이다. 우크라이나전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바흐무트 전투로 무기가 부족해져 병사들에게 삽까지 쥐여준 러시아를 도우려 중국이 무인공격기를 공급할 거란 보도가 나오고, 최근 대표적인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에 이어 유럽연합은 비회원국임에도 우크라이나에 직접 11억 달러 규모의 탄약 지원을 추진 중이다.
우크라이나전은 더는 '그들만의 전쟁'이 아닐뿐더러, '대다수의 전쟁' 나아가 '모두의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과 태국이 1차 대전 승전국이란 역사는 우리에게 가볍지 않다. 미국 등 친우크라이나 진영의 무기지원 요구는 강도를 더할 것이고,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레버리지와 무역을 걸어 반대의 압박을 가할 것이다. 역사학자 존 키건은 '1차 세계대전사'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우크라이나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데 동의한다면, 모두의 전쟁의 일원이 될 뜻이 없다면, 우리의 길을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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