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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식 가미카제를 건의한 여성 파일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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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가 추구한 아름다움에 미학이란 예술적 용어를 부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형용모순이다. 이른바 나치 미학은 자유-자율이란 예술 보편가치의 부정과 이념-사상적 통제하에 구축됐고, 나치의 퇴폐-모더니즘 미학에 대한 배척과 그들이 이상으로 추구한 ‘고전주의적 미덕’도 국가사회주의 선전이라는 목적의 수단이었다. 조지 오웰은 모든 문학, 심지어 목가적인 전원시조차 현실을 외면한 정치행위의 하나라 규정했지만, 그는 문학행위를 포함한 자신의 삶 거의 전부를 광의의 정치에 던져 넣은 작가였다. 나치 미학은 반(反)미학이었다.
게슈타포와 나치 공군을 창설한 헤르만 괴링은 ‘철십자훈장’으로 대표되는 나치 국가훈장과 별개로, 자신이 디자인해 만든 사제(私製) 배지를, ‘루프트바페(독일공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수여하곤 했다. 자신의 미적 취향과 지위와 권력의 과시 행위였다.
1936년 그가 만든 ‘파일럿/옵저버 배지’가 대표적 예다. 스와스티카를 움켜쥔 독수리가 화환을 뚫고 날아오르는 형상의 그 배지는 사병-하사관용은 직물로, 장교용은 황금 화환에 은독수리로 제작됐다. 황금과 백금에 다이아몬드로 독수리와 나치 문양을 장식한 배지도 70개를 주문 제작, 자신을 비롯한 나치 수뇌부와 무솔리니, 핀란드 국가원수 등에게 선물했다.
그 한정판 다이아몬드 배지를 받은 여성은 단 한 명, 여성 테스트 파일럿으로 1급 철십자훈장을 탄 한나 라이치(Hanna Reitsch, 1912~1979)였다. 숱한 동력-무동력 비행 기록을 수립한 라이치는 패전 직전인 1944년 2월 28일 히틀러를 찾아가 ‘가미카제’와 같은 글라이더 자살편대를 조직할 것을 건의한 일화로 악명 높다. 그는 전후 18개월 징역형을 산 뒤 비행사 이력을 이어갔고, 숨질 때까지 괴링의 배지를, 히틀러가 하사한 독약 캡슐과 함께 간직했다. 광장에서 ‘퇴폐’ 미술품을 소각한 나치 수뇌부는 뒤로는 빼어난 작품들을 은밀히 소장했고, 가장 유난을 떤 게 괴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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