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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푸틴과 전쟁 중에 웬 '부패 청산'? 그게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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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최근 '부패 스캔들'로 발칵 뒤집혔다. 에너지부 차관이 뇌물 혐의로 체포됐고, 군 지도부는 전장의 병사들이 먹을 식자재 가격을 부풀려 뒷돈을 챙기다 적발됐다. 언론과 정부 조사로 밝혀진 부패 사건으로 사직한 고위 공직자가 12명에 달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패와의 전쟁'을 약속했다. 러시아를 이기는 데 국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에 '또 다른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전력이 분산될 것이란 우려가 뒤따랐다.
한국일보는 20일(현지시간) 국가적·국제적 부패 청산을 위해 설립된 '국제투명성기구(TI)' 우크라이나 지부의 전무이사인 안드리 보로비크와 만나 우크라이나가 두 개의 전쟁을 하는 이유를 들어 봤다. 보로비크는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 시민감시위원(2018년), 반부패검사선발위원회 위원(2020년), 독립국방반부패위원회 및 유엔반부패 협약 이사(현재) 등을 역임한 반부패 분야 전문가다.
우크라이나의 청렴도가 낮은 건 사실이다. 올해 1월 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크라이나의 청렴 점수는 100점 만점에 33점이었다. 180개국 중 116위다. 보로비크도 "갈 길이 멀었다"고 했다.
그러나 "추세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보로비크는 말했다. 그는 "2019년, 2021년을 제외하면 매년 1, 2점씩 오르는 추세"라며 "10년 동안 8점 오르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같은 기간 4점 이상을 올린 국가는 25개국밖에 안 된다"고 했다.
전쟁, 대형 재해 같은 국가적 재난이 닥치면 사회 시스템이 망가져 청렴도가 낮아지는 게 보통이다. 보로비크는 "그걸 감안하면 우크라이나가 선방했다"며 "'부정부패는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고위공직자 일부의 뇌물 수수는 '개인의 일탈' 성격이 강하므로, 이번 부패 스캔들을 '우크라이나 전체의 부패'와 동일하게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군 물자 조달 비리로 전쟁 사령탑인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쑥대밭이 됐다. 국방부 차관이 물러났고 국방부 장관 교체설도 꺼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기대하는 나라 밖 시선이 '부패와의 전쟁'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보로비크는 우크라이나 여론은 다르다고 했다. "지난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쟁이 끝난 후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부패 청산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꼽은 응답자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현대사와 관련이 깊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약 20년 간 혼돈의 시기를 보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지만, 민심은 순응하기보다 개혁을 원했다. 그 요구가 폭발한 것이 2014년 시민들이 일으킨 '유로마이단 혁명'이다.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축출한 명분 중 하나가 부패 청산이었다. 보로비크는 "부정부패 청산은 우크라이나인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이번 부패 스캔들은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인도적 지원을 쏟아 붓는 시기에 터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망이 커져 지원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보로비크는 오히려 호재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강도의 개혁 의지를 보인 것이 오히려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또 "전쟁 중이어도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국방부조차 흔들 수 있다는 것, 언론이 공직사회의 비리를 폭로할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다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완성된 민주국가를 향해 잘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파트너 국가들에 전달했다고 믿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가입 결정권을 가진 EU 집행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부패 스캔들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된 건 그래서다. 우크라이나의 EU 진출에 반대하는 회원국들이 트집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로비크는 이번엔 낙관하지 않았다. "EU 가입 문제에는 여러 요구와 조건, 정치·경제적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모든 국정 의제에 '부정부패 청산'이 포함되고, 전쟁 중에도 개혁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쓴 약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정부패와 무관한가'라고 의심하는 시선도 끊이지 않는다. 전쟁 직후 계엄령을 내려 국가 권력을 틀어쥐었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견제할 힘이 마땅치 않기에 부패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겠냐는 우려다. 우크라이나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어서 더욱 그렇다.
보로비크는 "합리적인 의심"이라면서도 "그런 리스크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이 함부로 타락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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