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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살된 부대원 사진이 '추모의 벽'에 한꺼번에 걸린 날 키이우는 통곡했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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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추모의 벽'이 있다. 성 미카엘 대성당을 에워싼 푸른색 벽에 러시아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2017년 추모의 벽 조성 때는 사진이 많지 않았다. 2014년 돈바스 전투 전사자들의 사진이 벽의 한 구역만 채웠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략 이후 전사자가 쏟아지면서 벽의 빈 공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추모객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늘었다. 키이우 시민들은 이곳을 수시로 찾아 슬픔을 나눈다. 키이우를 방문하는 외국 정상과 정치인들도 꼭 들른다. 이러한 비극의 장소가 키이우에 점점 늘어난다. 비극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20일(현지시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추모의 벽을 찾았다. 벽 앞에 서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추모의 벽을 배경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두 팔로 서로 끌어안는 사진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연대'의 상징물이 됐다.
21일 한국일보가 둘러본 추모의 벽 앞에는 전사자들을 기리는 카네이션이 가득했다. 추모객들은 군인들의 얼굴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애통해했다. 류드믈라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전사자가 있는데 아직 사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올렉시이는 "추모의 벽은 키이우 방문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며 "세계의 지도자들은 꼭 여기부터 들렀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붐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없다"고 했다. '아무도 죽지 않는 날'이 우크라이나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 기자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전쟁 보도를 하곤 한다. 이날도 많은 취재진이 보였다.
2014년 전사자와 2022~2023년 전사자들의 사진은 달랐다. 군 당국이 붙인 과거 사진들은 크기가 일정했고, 이름, 나이 같은 정보가 통일된 서체와 크기로 적혀 있다. 최근에 부착된 사진들은 제각각이다. 가족 혹은 동료 병사들이 붙인 사진이라서다. 사진이 얼마나 늘어날지 몰라서 정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나스타시야는 "최근 한 부대 전체가 전사해 한꺼번에 많은 사진이 부착되는 것을 봤다"며 "빈 공간이 순식간에 메워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추모의 벽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엔 '독립 광장'이 있다. 2014년 2월 친러시아 정부를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의 중심지로,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여긴다.
광장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전쟁 중 사망한 전사자와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리려 꽂아 둔 깃발이다. 깃발에는 사망자의 이름과 사망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6월 찾았을 때보다 깃발 개수가 3배 이상 늘었다. 8개월 사이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일요일인 19일 광장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은 깃발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한 짓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목숨 바쳐 싸우는 군인들을 위해 기부금을 걷었다.
키이우엔 '용기의 거리'도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각국 지도자의 이름이 각인된 현판이 바닥에 설치돼 있다. 미국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를 닮았다. 지난해 8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성한 것으로,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아무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 각별한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 13명만 새겨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은 20일 추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이다.
새겨지는 이름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전쟁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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