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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키이우 방문, 첩보작전 방불...시내에선 '중요한 손님 올 것' 소문 돌아

입력
2023.02.20 21:53
수정
2023.02.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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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예고 없이 키이우 전격 방문
주요 도로 폐쇄, 공습 사이렌도 울려
폴란드 국경에서 기차로 우크라 이동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예고 없이 방문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미카엘 대성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걷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예고 없이 방문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성 미카엘 대성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걷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전역에 경보가 울리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땅을 직접 밟을 경우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의 깜짝 방문은 이 전쟁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20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 후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처음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인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인 줄무늬 넥타이를 맨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쯤 키이우에 도착해 대통령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를 만났다. 이후 성 미카엘 대성당으로 이동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주변을 10분가량 산책했다. 이 건물은 구소련에 의해 파괴됐으나 1999년 다시 지어졌다.

전투 중 사망한 우크라이나 병사를 추모하는 '전사자의 벽'에 헌화한 두 사람은 포옹을 하기도 했다. 다시 회담장으로 자리를 옮긴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궁 방명록에 우크라이나어로 '슬라바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는 글을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떠나기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관도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키이우 도심을 거니는 동안 울린 경보는 러시아 동맹국인 벨라루스에서 이륙한 러시아 전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를 "정기적으로 폭격을 받는 전쟁 중이자 그를 보호할 미군도 없는 나라"라며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라고 평가했다.

기자단에 '가짜 일정표' 제공하며 비밀리 추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추모하는 전사자의 벽을 방문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추모하는 전사자의 벽을 방문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키이우 방문은 극비리에 이뤄졌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 방문 기간 중 우크라이나로 넘어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날 일정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기자단에도 폴란드 바르샤바로 간다는 '가짜 일정표'를 배포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이 보안 위험 때문에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포기했다고 보도하는 등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

다만 이날 아침부터 키이우에서는 주요 도로가 폐쇄되고, 성 미카엘 대성당 인근은 경찰과 군이 엄중히 통제하는 등 '중요한 손님'이 오리란 소문이 돌았다. 백악관은 기자단에게 비밀 유지 서약서를 받고 휴대폰 등을 반납하도록 하는 등 방문이 끝날 때까지 보도를 유예할 계획이었으나,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에서 이를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습을 우려해 비행기로 폴란드까지 간 후 국경에서 기차로 갈아타 우크라이나까지 가는 등 10시간이 걸려 이동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동 수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전쟁이 일어난 후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정상 등 잇따라 키이우를 방문한 서방 지도자들은 기차를 이용했다. 질 바이든 여사도 지난해 5월 키이우를 찾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언제까지나 우크라 편" 선언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 궁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 궁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은 전쟁이 길어지며 연합이 느슨해지려는 시점에 진행됐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점령 영토 포기 등 '평화 협상'에 나서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것은 러시아가 협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전선 교란"이라고 말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에서도 "백지 수표를 주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두 달 전 워싱턴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에서 직접 상황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를 초청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에 러시아에 이를 통보했다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밝혔다.

부통령 시절 키이우를 6차례나 방문했다며 각별한 인연을 드러낸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언제까지나 우크라이나 편에 설 것"이라며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

패트릭 버리 영국 배스대학교 국방·안보 전문가는 "푸틴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장기전을 각오하고 물러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는 방문"이라고 BBC방송에서 평가했다. 침공 당일(24일)이 아닌 이날 키이우를 찾은 이유는 "러시아 폭격 가능성이 높은 기념일에 대통령을 보내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 5시간 키이우에 머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폴란드로 출발, 다음날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회담한다. 22일에는 불가리아, 체코 등 나토 소속 동유럽 9개국으로 구성된 부쿠레슈티 9개국 정상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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