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 14세 강간범·살인범이 처형 직전 목숨 건진 사연

입력
2023.02.23 04:30
수정
2023.02.23 09:1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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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죽음에서 돌아온 자 [미스터리로 남은 교수대의 '저항']

교수대 오작동으로 형장에서 살아남은 존 리(오른쪽)와 그의 사연을 소개한 당시 잡지 표지. 유튜브 화면

교수대 오작동으로 형장에서 살아남은 존 리(오른쪽)와 그의 사연을 소개한 당시 잡지 표지. 유튜브 화면

법원에서 확정된 형의 집행 절차는 검찰청법과 ‘검찰집행사무규칙’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다. 사형도 형이 확정되면 집행 여부와 시점은 법무부가 정한다. 대통령 특별사면이 없는 한, 형의 취소는 오직 법원의 재심 판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사형 집행이 기술적 오류 등 돌발적 변수로 세 차례 이상 불발되면 형을 면제받는다는 건 법과 통치자의 의지보다 ‘신의 뜻’이 중시되던 시대의 관행에서 비롯된 ‘전설’이다. 형사소송법상의 ‘일사부재리 원칙’ 즉 동일 사건에 대해 판결 혹은 면소 판결이 확정된 경우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원칙이 형 집행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은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 미국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수용하지 않았다. 14세 소녀를 납치 강간한 사형수의 정맥을 찾지 못해 형 집행이 유예된 사건에서 2016년 주 대법원은 ‘형 재집행이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하는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변호인의 주장을 묵살했다.

처형 설비 오작동 등으로 감형받은 극소수 가운데 영국인 존 리(John Babbacombe Lee, 1864~1945?)의 예는, 온갖 가설과 더불어 논픽션과 노래로도 재조명된 꽤 알려진 사건이다. 만 20세 때인 1884년 주인 노파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정황 증거와 관계자 진술만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2월 23일 엑서터(Exeter) 교도소 교수대에 섰다. 하지만 기계 고장으로 세 차례 형 집행이 무산됐고, 그는 시민들의 구명운동 덕에 1907년 12월 석방됐다.

다른 곳에서 절도 혐의로 체포돼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6개월 실형을 산 적이 있던 그는 노파 살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신은 나의 결백을 안다”며 확정 판결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수 시민들은 신이 형 집행을 저지했다고 믿었다. 처형 실패의 진상만큼이나 출옥 후 그의 행적도 모호해서, 런던서 술집 바텐더로 일했다거나 2차대전 중 숨졌다는 설,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는 설 등이 엇갈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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