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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맛본 '민주주의' 위해 미얀마 Z세대는 목숨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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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합법적인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지 2년이 지났습니다. 미얀마인들은 총을 들고 싸웁니다. 피와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미얀마인들은 과거의 우리와 닮았습니다. 한국일보는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남동부 카렌주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 군부와 싸우는 시민방위군(PDF)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학생군의 민주주의 수호 전쟁을 취재했습니다.
“아들, 빨리 일어나 봐! 쿠데타가 일어나서 아웅산 수치가 잡혀갔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거짓말 마세요. 저 더 잘래요.”
이달 3일 미얀마 카렌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부대에서 만난 학생군 리앤테(21)의 회고다. 2021년 2월 1일 오전 6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깼지만 믿지 않았다. 대학생이었던 리앤테에게 쿠데타는 교과서에나 있는 단어였다. 미얀마 현대사가 독재로 점철되긴 했으나 민주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총칼로 무너지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두 시간 뒤 일어난 리앤테의 세상은 뒤집혀 있었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됐고 전화도 먹통이었다. TV를 켰다. 군부 편인 관영 방송 미야와디TV 보도가 나왔다.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선거 부정에 대응해 (민주진영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을 구금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민주진영이 승리하자 군부는 부정 선거라고 주장했다.)
오전 11시 인터넷이 다시 연결됐다.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온통 쿠데타 얘기였다. 가장 많이 보인 글은 "사흘만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리앤테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군부에 압력을 넣으면 조기에 해결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은 것 같다"고 했다.
기다려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다. "독재자는 물러가라"고 외쳤다. 리앤테는 난생처음 물대포라는 걸 맞았다. 평화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군경이 폭행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봤다. 시위대가 총을 맞고 쓰러질 때마다 몸을 떨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괜찮았다. 계속 버티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전국을 휩쓴 시민불복종 운동(CDM)이 수개월간 계속돼도, 국제사회가 군부를 비판해도 그대로였다. 도시가 피로 물들었지만 군부는 귀를 막았다. “결국 총을 잡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었다. 리앤테도 학생군이 되기로 결심했다. "자유와 인권 없는 삶을 사느니 죽기로 싸워 보자"고 용기를 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반대했다. 몇 달간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1980년대부터 자유민주주의 수호 투쟁을 해온 ABSDF와 연이 닿았다. 2021년 11월의 어느 낮 리앤테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가출'을 했다. 시민군과 학생군의 근거지인 카렌주로 달려갔다.
한 달의 훈련을 마치고 처음 집에 전화를 건 날 어머니는 돌아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싫어요, 집에 안 가요.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여기 있다가 갈게요.” 리앤테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산악지대 밀림에서 지내며 전쟁을 치르는 게 쉬울 리 없다. 처음 포복 훈련을 하면서 느낀 고통은 엄청났다.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동료들이 심한 부상을 입고 귀환할 때면 공포가 닥친다. 리앤테는 잃어버린 삶을 이따금 상상한다. 미용실에 가서 엉망인 머리를 다듬거나, 스무 살의 계획으로 세워 뒀던 인도차이나반도 자전거 종주에 나서거나.
"그런 게 삶의 우선순위는 아니다"라고 리앤테는 말했다. “당장의 생활이 안락하다 해도 쿠데타 정부의 통치를 받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미얀마가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모두의 인권이 보호되는 나라가 될 때까지 싸울 거다.”
쿠데타 군부에 맞선 최전선에는 미얀마 Z세대(1995~2009년 출생)가 있다. 청년들은 목숨을 내놓고 군부에 대항한다. 초기 사망자 통계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쿠데타 발생 50일째인 2021년 3월 11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사망자 최소 70명 중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라고 밝혔다. 군부가 정권을 잡은 직후 1년간 사형을 선고한 100명 중 대부분도 20대다.
역사상 벌어진 수많은 저항 운동의 중심에 청년들이 있었지만, 미얀마 청년들의 사연은 더 특별하다. 미얀마는 1962년 군부 정권이 들어선 뒤 반세기 동안 군정 치하였다. 민주 체제였던 시기는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문민정부가 출범한 때를 전후로 길게 잡아 약 10년에 그친다. 당시 총선은 미얀마 최초의 민주선거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준민간정부 시대였다.
미얀마의 20대는 짧고도 달콤했던 10년간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를 보내며 민주주의를 체득했다. 군부 통치하에서 성장한 기성세대와 달랐다.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했고, 디지털 시대를 살며 동시대 다른 나라 청년들의 삶이 어떤지를 목격했다.
수의사 출신 시민군인 딴센텅(27)은 “2015년 생애 첫 선거였던 총선에서 내 손으로 뽑은 정권이 선출됐다”며 “그때는 군부뿐 아니라 여당을 비판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나와 내 친구들은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에 산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시대의 경험이 Z세대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미얀마 20대는 곳곳에서 싸운다. 교육 현장에서, 거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치지 않고 저항한다. 미얀마와 모에이강 하나를 사이에 둔 태국 매솟에 있는 난민 학교에서 미국검정고시(GED)를 준비하고 있는 다다(22)를 만났다. 양곤대 학생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군부를 비판하는 전단지를 뿌리는 등 시위의 선봉에 섰다가 군경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체포를 피해 친척집과 친구집을 전전하던 다다는 총을 잡았다. ABSDF 전투병이 되어 밀림에서 정부군과 싸웠지만, 급격한 건강 악화로 1년 전 다른 길을 찾았다. 교사가 되어 미얀마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매솟에서 만난 미얀마 대학생 브레이브(23)는 2021년 시민불복종운동 이후 학교를 떠난 교사들을 위해 성금을 모으고 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힌드라시의 한 대학 학생회장이었던 그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군부에 쫓겼다. 카렌주 산악지대 민가로 대피했다가 민간인을 겨냥한 정부군 폭탄에 다리 하나를 잃었다. 이후 태국으로 피신해 후방 지원을 하고 있다.
브레이브의 말. “다리를 다친 뒤 군부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무섭다. 그래도 괜찮다. 민주주의를 맛본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음 세대에 민주국가를 물려주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미얀마의 봄’을 기다리며 청춘을 불사르는 20대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이번 미얀마·태국 현지 취재를 하면서 인터뷰한 14명에게 물었더니, 공통적으로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군부 독재는 없고 민주주의는 있는 나라. 외세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끼리 반목하지 않는 나라. 전쟁이 없는 나라. 국가 재산을 개인 호주머니에 넣지 않는 나라. 누구든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는 나라. 사회인프라와 교육시스템이 탄탄한 나라. 그리고, 자유와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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