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들 떳떳한가

입력
2023.02.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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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에도 반성 없는 조국·윤미향
곽상도 50억 무죄 만든 검찰도 몰염치
떳떳하려면 반성·수사부터 제대로 하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녀 조민씨가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버지의 유죄 판결에 대해 "나는 떳떳하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녀 조민씨가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버지의 유죄 판결에 대해 "나는 떳떳하다"고 밝히고 있다. 뉴스1

조민씨가 6일 얼굴을 공개한 인터뷰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아니라 조민으로 당당하게 숨지 않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며칠 새 11만 명을 넘겼다. 인터뷰는 마치 ‘인플루언서 선언’인 셈인데 그 출발이 “떳떳하다”라니 착잡하다.

“아버지가 장관직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조씨의 말에 공감한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남았다면, 검찰이 그토록 가혹하게 털지 않았다면, 그의 가족은 안온한 일상과 명예를 유지했을 법하다. 지금 아버지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어머니는 징역 4년이 확정돼 수감 중이며 자신은 고려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돼 소송 중이다. 검찰 수사를 “가족 전체의 도륙”이라 했던 조 전 장관의 말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사실로써 무고함을 주장할 수는 없다. 조씨의 허위 스펙은 재판에서 모두 확인됐다. 조씨는 위조 표창장이 입시에 결정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기회를 가로채려 했다는 것 자체가 반성할 일이다.

우리 사회엔 조국 사태 이후 강화되고 있는 악습이 있다. 염치의 상실이다. 2019년 8월 장관 지명 후 불거진 의혹들에 조 전 장관이 “불법은 아니다”로 대응한 이후 고위 공직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법대로’를 외친다. 사법적 판단이 나와도 해석이 제각각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1심 판결에서 8개 혐의 중 7개에서 무죄를 받았다 해서 이재명 대표의 사과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 쳐도 위안부 활동가의 1,700만 원 횡령은 사소하지 않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자녀의 스펙 부정에 대해 “입시에 사용하지도 않았다”며 큰소리친 것 역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다. 큰 불법만 아니면 괜찮다는 엘리트 권력층에 국민들은 환멸이 깊어진다. 정치 신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이 그래서 가능했다.

심해지고 있는 또 다른 악습은 검찰권 행사의 자의성이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받은 50억 원은 판사도 정상적 퇴직금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알선수재죄는 검찰의 입증 부족으로, 뇌물죄는 아들이 독립생계라는 판사 판단으로 무죄가 됐다. 검찰이 70곳을 압수수색한 조국 일가 수사처럼 곽상도 부자를 뒤졌어도 과연 무죄였을까.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공범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시점에 김건희 여사 조사 한번 없었던 건 변명거리도 없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을 주장했었다. 지금의 검찰은 철저히 살아있는 권력 눈치를 보고 선택적으로 수사하며 사회적 약자에게만 법치를 강요하는 듯하다. 검찰이 정치적이지 않은 적은 없으나, 지금처럼 ‘공정한 척’조차 하지 않기는 드물다.

한국 사회는 조국 일가의 위선이 문제냐,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 문제냐를 놓고 물러섬 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진영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정권의 향배를 결정한 변수였다. 우리는 양면 모두 자명한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쪽의 잘못으로 다른 문제를 지울 수 없고 남의 과오를 내 정당성의 알리바이로 삼을 수 없다. 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함으로써 시민이 엘리트 권력층과 검찰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권력자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이렇게 촉구해야 한다. 조 전 장관은 사회적 책임이 큰 일원으로서 사모펀드 무죄를 내세우기 전에 사과부터 하라. 김 여사는 윤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검찰 조사를 자청하라. 검찰은 직업적 양심과 자존심이 남아있다면 김 여사와 곽 전 의원 혐의 규명에 사활을 걸라. 권력이 떳떳함을 주장하려면 이쯤은 돼야 한다.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거액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에선 50억 특검이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거액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에선 50억 특검이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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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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