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80만 명 몰려
갈아치우자는 욕망에만 매몰될 건가
책임 묻고 타협하려면 내각제가 대안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라는 국민동의청원에 서명자가 1일 80만 명을 넘겼다. ‘30일 내 5만 명 동의’라는 국회 회부 요건을 사흘 만에 총족하고도 접속자가 폭주 중이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사이드웨이 발행)이 기름을 부었다. 박홍근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좌파 언론들이 2~3일 전부터 사람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 내보낸 이유(도) 의혹’이라고 말했다는 전언 메모를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밝혔지만 이렇게 얼버무려선 의혹을 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물불 안 가리는 요즘 민주당을 보면 탄핵 카드를 어떻게 휘두를지 모르겠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탄핵소추했거나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전 대표 혐의와 얽힌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에게 대북송금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서도 “편향된 가치관과 선입견, 독선과 오만”(김승원 의원)이라 비난했고 “퇴출당해야 한다고 본다”(민형배 의원)고 압박했다. 대북송금 수사 검찰에 대한 특검법 발의, 대선 출마 1년 전 대표직 사퇴에 예외를 둔 당헌당규 개정,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강민구 최고위원) 발언 등 민주당의 비정상도 도를 넘었다.
지지율 20%대의 레임덕 대통령이라고 탄핵할 수는 없다. 채수근 상병 수사 외압 의혹, 디올 백 수수가 분노를 자아내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위헌·위법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국민이 강하게 요구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하리라는 주장은 법치 국가를 부정하는 말이다. 대통령에게 실망할 때마다 집회-탄핵-보복적 정권교체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정치, 민주주의 후퇴로 접어들어선 안 된다.
몇 시간을 기다려 탄핵 청원에 서명하는 이 열정을, 대통령 갈아치우고픈 이 갈망을, 더 나은 제도로 승화시키기를 소망한다. 3년이 너무 긴가. 다음 5년이라고 길지 말란 법이 있나. 그렇다면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 총리에게 제때 책임을 묻도록 하자. 내각제였다면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선거로, 의회가 내각불신임으로, 또는 집권당이 정권유지를 위해 선제적으로 총리를 교체했을 것이다. 내각제에 대한 흔한 오해는 의회의 내각불신임권, 총리의 의회해산권이 남발돼 혼란스럽다는 것인데, 오히려 한국에 필요한 게 이런 견제다. 마이웨이를 고수해도 임기 5년을 보장하는 대통령제는 무책임하다. 여소야대로 정부가 일을 못 하게 하는 심판은 자해적이다.
국민은 ‘대통령은 내가 뽑는다’는 1987년의 쟁취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 대한 불신도 높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다시 도약할 때다. 의대정원, 연금개혁, 미중 패권경쟁 대응 등 21세기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는 대통령 한 명의 능력으로 해결 불가다. 내각제라는 집단 리더십, 타협의 정치가 필요하다. 능력은커녕 진영 안에서 후보를 찾지도 못하지 않았나. 애초에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찰총장이 단숨에 대통령이 되는 이 시스템이 나는 불안하다. 심판의 열기 앞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린 후보도, 재판 중인 후보도 문제 삼지 않는 유권자 양극화가 두렵다. ‘더 싫은 쪽을 떨어뜨리는 선거’에 매몰돼 자격 없는 이를 뽑고 탄핵으로 치닫는 이 구조를 벗어날 때가 됐다.
내각제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면 유럽 선진국 대다수가 왜 내각제를 채택했는지 생각해 보자. 존재하지 않는 초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수가 머리를 맞대는 게 더 현실적이다. 소수 의견도 의회에 진출하는 게 더 민주적이다. 승자독식보다 타협과 연정이 더 절실하다. 그러니 탄핵의 열정을 내각제 개헌에 쏟아보자. 더 뜨거울 새 정치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