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곰도 아니었고, 곰을 사랑해서도 아니었다

입력
2023.02.1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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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테디 베어

1902년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클리포드 베리먼의 만평.

1902년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클리포드 베리먼의 만평.

봉제 곰인형 ‘테디 베어(Teddy bear)’의 탄생 설화는, 진짜 설화들처럼 미화-과장된 면이 있다.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가 1902년 미시시피 강 유역으로 곰 사냥을 나갔다가 수행원들이 붙잡아 둔 어린 곰을 살려 보낸 미담이 탄생 설화의 알려진 줄거리다.

뉴욕의 부유한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폐렴과 천식 등 잔병치레가 심했던 루스벨트는 육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마라톤 등 운동에 열중했고, 남성적 이미지를 키우고자 카우보이 문화를 좇으며 특히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BBC 히스토리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냥 여행 중 일행과 함께 6,000마리가 넘는 야생동물을 사냥했다고 과시한 적도 있었다. 그가,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국립공원에 편입된 노스다코타의 방대한 땅과 목장을 사들인 것도, 야성적 풍광 못지않게 마음껏 들소 사냥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1902년 11월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주 경계선을 확정하기 위해 현지에 간 그는 당시 미시시피 주지사의 주선으로 사냥에 나섰다. 그날 그는 적잖은 동물을 사냥했지만, 정작 노리던 곰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수행원들은 늙은 흑곰 한 마리를 추격, 기진맥진한 곰을 궁지에 몰아 놓고 대통령에게 최후의 일격을 청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비신사적’이라며 곰을 풀어주게 했다. 곰이 딱해서라거나 말처럼 비신사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의 캐릭터상 더 부합할지 모른다.

다음 날 워싱턴포스트에는 수행원이 밧줄로 붙들고 있는 새끼 곰에게 루스벨트가 총을 거두고 돌아서는 장면을 담은 만평이 실렸다. 그 따듯한 이미지에 착안한 뉴욕의 한 장난감 가게 주인(Morris Michtom)이 백악관에 요청, 대통령의 애칭(테디)을 곰인형에 써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 1903년 2월 15일 두 개의 ‘테디 베어’를 진열했다. 테디가 살려준 곰이라는 의미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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