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비리 스캔들로 주목받는 ‘뇌전증’…불치병 아니고 약물‧수술로 치료 가능

입력
2023.02.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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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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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腦電症ㆍepilepsy)은 뇌 속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뇌파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다. 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서 불규칙하고 반복적으로 발작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간질(癎疾) 전간증(癲癎症) 등으로 불렸다. 뇌전증은 이런 발작이 특별한 유발 요인 없이 최소 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일생에 걸쳐 2회 이상 발생할 때를 말한다.

오는 2월 13일은 세계 뇌전증의 날이다. 국제뇌전증협회(IBE)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은 2015년부터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 해 14만 명 넘게 치료받아

뇌전증은 한 해 15만 명에 가까운 환자가 병원을 찾을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뇌전증으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14만8,293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400명 이상이 뇌전증으로 진료를 받는 셈이다.

발생률은 9세 미만에서 가장 높고 이후 감소해 성인기에는 낮은 발생률을 보이다가 60~70세 이후 다시 증가하는 U자 곡선을 보인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전 인구의 0.5~1%에서 나타날 만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흔한 신경계 질환 중 하나이지만 결코 불치병이나 정신병이 아니다”며 “숨겨야 하는 질환이 아닌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비정상적 뇌파가 원인… 약물ㆍ수술로 대부분 일상생활 가능

뇌전증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수히 많다. 연령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뇌전증 발병 원인은 △유전 △분만 중 뇌 손상 △뇌염이나 수막염 후유증 △뇌가 형성되는 중에 문제가 있을 때 △뇌종양 △뇌졸중 △뇌혈관 기형 △뇌 내 기생충 등이 꼽힌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는 원인을 알지 못한다.

발작은 크게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 발작’과 뇌의 일정한 부위에서 시작되는 ‘국소 발작’으로 나뉜다. 발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눈을 치켜 뜨고 소리를 지르며 입에 거품이 고이는 대(大)발작을 주로 떠올리지만 실제로 성인에서는 국소 발작이 더 흔하다.

국소 발작은 한쪽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거나 한쪽 얼굴만 실룩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고개와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입맛을 다시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전신 발작에는 몸이 전체적으로 굳어지다가 떠는 전신 강직간 대발작, 갑자기 하던 행동을 중단하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결신 발작, 갑자기 전격적 또는 순간적으로 전신이나 팔다리, 몸통의 일부에 강한 경련이 일어나는 근간대발작 등이 있다.

뇌전증 치료는 약물과 수술로 나뉜다.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경련제 복용이다. 뇌전증 환자의 60% 이상은 적절한 약물 치료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뇌전증 발작 종류와 뇌전증 증후군에 따라 사용하는 약물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신경과 전문의와 반드시 상의한다. 최근 뇌전증 치료를 위한 약물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메커니즘의 항뇌전증 약물이 개발되고 있다.

반면 뇌전증 환자의 30% 정도는 약물 치료로도 발작이 잡히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진단되는데, 이때는 수술을 고려한다.

최윤호 교수는 “최근 뇌전증 수술 기법이 발달하고 수술 성적이 향상되면서 굳이 난치성 뇌전증이 아니더라도 수술 후 뇌전증 조절률이 높은 일부 질환에서는 조기에 수술을 1차적으로 고려하기도 한다”며 “뇌종양이나 동정맥 기형 등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병소가 뚜렷이 있을 때 해당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뇌전증 환자가 수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술 전 두개강 내 전극을 이용한 뇌피질파 검사 등 충분한 검사를 통해 예상되는 수술 결과와, 수술로 발생할 수 있는 신경 증상이나 합병증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 수술 여부와 수술 방법을 결정한다.

이 밖에 발작 완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미주신경자극술(VNS), 뇌심부자극술(DBS), 반응성뇌자극술(RNS), 케톤생성 식이 요법 등이 있다.

◇발작 시 기도 유지 중요…수 차례 이상 반복 땐 응급실 찾아야

일단 뇌전증 발작이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환자를 안전한 곳에 눕힌 후 몸을 조이는 벨트나 넥타이 등을 느슨하게 한다. 특히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기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에 이물질이 있으면 반드시 단단한 기구를 사용해 빼낸다. 자칫 손가락을 이용하면 다칠 수 있다. 상비약 등을 입으로 투여하면 흡인성 폐렴이나 기도 폐쇄를 일으킬 수 있기에 절대 금물이다.

발작이 발생했을 때 곧장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몇 분 이내에 자연적으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 차례 이상 발작이 반복되거나 의식 회복 없이 30분 이상 지속하면 매우 위급한 상황(뇌전증 지속 상태)으로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최윤호 교수는 “뇌전증 환자 발작이 잘 조절될 때에는 지적 능력이나 업무 능력에서 다른 일반인과 차이가 없다”며 “뇌전증 발작은 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이상 흥분 현상으로 발생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억누르는 약물을 쓰거나 병소를 제거하면 대부분 조절할 수 있고 일부는 완치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음주·운전 피하고, 감기약·한약 복용 시 성분 확인해야

뇌전증 환자라면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알코올은 항경련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자체로 발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을 땐 일반 종합 감기약을 복용하기보다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감기약 성분 중 약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을 수 있고 항히스타민제를 많이 먹게 되면 발작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한약을 먹을 때도 주의한다. 한약 성분 중 항경련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이 있을 수 있다. 운동할 때 수영ㆍ암벽타기 등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위험한 운동은 동반자와 함께한다.

뇌전증 환자는 절대로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고 안정적인 경과를 보인다면 담당 의료진의 의견과 뇌파 검사 결과 등을 참고해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은 마련돼 있다.

기본적인 운전 적합성 기준은 1년간 운전에 방해가 되는 뇌전증 관련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로 한정된다. 뇌파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담당 의료진과 상의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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