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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르포] 꺽꺽 우는 소리, 뒹구는 하이힐...도시는 죽음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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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주의 주도 카라만마라슈.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 피해가 가장 극심한 곳이다. 지진의 진원이자 비극의 진원이다.
한국일보는 6일 새벽(현지시간) 규모 7.8의 최초 지진이 발생한 지 이틀 만인 8일 밤 카라만마라슈에 도착했다.
'폐허' 말고는 도시를 설명할 말이 없었다. 붕괴된 건물들은 형체도 없었다.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으로 된 거대한 산들이 곳곳에 우뚝 솟아 있었다. 잔해 속 어딘가에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잔해 밖에서 실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꺽꺽 우는 소리, 굴삭기가 건물 잔해를 헤치는 소리,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뿐이었다.
사망자는 분 단위로 불어났다. "생존자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간격이 점차 길어졌다. 잔해 옆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한 실종자 가족을 만났다. 바로 옆에서 구조대가 다급하게 움직이는데도 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이렇게 기다리는 게 수십 시간째다. 기대할 힘도, 화를 내거나 슬퍼할 힘도 더는 없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당신들은 아는가." 한 이웃 주민이 말했다.
밤새 지켜 본 구조 현장은 지표면이 흔들렸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9일 아침까지 인근에서 규모 2~4의 여진이 계속 이어진 탓이다.
한국일보는 8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출발해 약 700㎞ 거리를 차로 쉬지 않고 달려 10시간 만에 카라만마라슈에 도착했다. 카라만마라슈 공항은 물론이고 가지안테프·아다이 등 인근 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은 거의 동이 난 상태였다.
이동하는 내내 우박과 눈발이 날렸다. 영하의 기온에 도로는 곳곳이 얼어 있었다. 주유소에선 대기줄이 길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교통 정체가 극심해졌다. 왕복 2차선 도로가 구호 차량과 대피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옆으로 빠지라"고 구급차 운전자가 고함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지하차도가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진으로 파괴돼 콘크리트 껍데기가 벌어진 채 철골만 튀어나와 있었다.
카라만마라슈는 인구 117만(2021년 기준)의 번성한 도시였다. 지진이 휩쓸고 간 뒤로는 온통 침묵과 암흑이다. 여진 피해를 우려해 건물을 모두 비운 까닭이다. 어둠을 밝히는 건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 켜둔 군데군데의 불빛뿐이었다.
밤 공기는 피부를 찌를 것처럼 차가웠다. 낮부터 영하로 떨어졌다는 기온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도시 중심부 주변엔 사람들이 몰려 살았다. 실종자가 그만큼 많았다. 구조 현장은 다급한 초조함으로 꽉 차 있었다. 이제부터는 단 한 시간이 생사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자가 나오자마자 바로 싣고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들것을 대기시켜 두고 앰뷸런스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구조대원들은 오직 생명만 생각했다. 카이세리시의 시장이 방문했지만, 한 구조대원은 "저런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일이다"라며 외면했다.
구조대원들은 잔해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채 헬멧에 달린 희미한 조명으로 잔해 사이사이를 비추었다. 숨소리, 신음소리를 놓칠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희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잔해 주변엔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양말과 더러워진 베개가 뒹굴었다. 짝을 잃은 하이힐도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물건들이었다.
도시 전체가 매캐한 악취와 뿌연 매연으로 가득했다. 실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 갈 곳이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이 몸을 녹이느라 침대 매트리스, 쓰레기, 가구 등을 닥치는 대로 태웠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매몰됐다는 소식에 카라만마라슈로 달려온 한 여성은 수십 시간을 바깥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멍하게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에게서 "수색 작업에 진전이 있나"라는 전화를 받은 뒤 엉엉 울었다.
한 학생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묻자 "친척이 묻혀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주 작은 힘조차 기도에 쓰겠다는 듯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 남성은 가족이 실종되지 않았는데도 건물 잔해 옆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겠다고 했다.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 나왔을 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승용차를 임시 거처 삼아 지낸다. 지진으로 깨진 창문은 담요나 옷으로 막는다. 건물이 추가 붕괴해 몰려든 차량으로 공터마다 만원이었다. 기자도 대학교 옆 공터에 차를 대고 헬맷을 쓴 채 쪽잠을 잤다.
그럼에도 희망은 존재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스쳤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일 수 있지만, "생존자가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종자 가족들은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몸을 부비며 위로했다. 이방인인 기자조차 환대받았다. 구조 작업에 파견된 한 경찰은 기자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건넸다.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게 희망은 어디서든 살아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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