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신 '세계의 공장' 된다고? '인도 대망론'의 실체는[인도시장 바로보기]

입력
2023.02.18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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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시장 바로보기①]
인도 진출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조언

지난 1일 인도 뭄바이의 한 거리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지난 1일 인도 뭄바이의 한 거리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넥스트 차이나' 인도를 주목하라"

"중국 경제가 울면 인도는 웃는다"

"인도, 중국 성장률 따라잡았다"


현재 국제경제 상황을 반영한 최신 기사 제목 같지만, 사실은 2013년 쯤 신문 지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이다. 인도가 미중 갈등을 등에 업고 중국을 대체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는 지금처럼, 10년 전에도 인도가 중국을 곧 따라잡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이어졌다.

당시는 중국 경제가 8% 이상 고속 성장을 하던 바오파(保八) 시대를 마감하고, 중속 성장 경로로 접어들던 때였다. 반대로 인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5~8%까지 성장률을 부쩍 높이고 있었다.

그런 인도는 금방이라도 중국을 넘어설 것 같았지만, 여전히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인도의 5배다. 중국을 대체할 '세계의 공장'이 될 거라지만, △낮은 가격에 △적정 품질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능력에서 인도는 중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인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여전히 2,000달러를 살짝 넘는 수준이다.

낙관론①: 사람, 사람, 사람...

인도 인구 전망.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도 인구 전망. 그래픽=송정근 기자

마치 그 때처럼 인도가 '또 다시' 뜬다고 한다. 달라진 것은 '넥스트 차이나'였던 표어가 '포스트 차이나'로 변한 것, 현상의 원인이 중국의 성장률 저하가 아닌 미국의 견제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10년 만에 돌아온 인도 대망론(大望論)은 이번엔 진짜일까. 과연 인도의 가능성을 믿고 중국 생산시설을 인도로 옮기는 결정을 내리는 게 현명한 일일까? 한국일보는 인도 현지에 진출한 사업가들과의 면담, 인도 사회·경제 체제를 깊이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을 통해, 인도가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지로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를 알아봤다.

인도를 보는 우리의 시각은 '초긍정'에서 '완벽 비관론'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이다. ①중국을 앞설 나라 ②무한한 가능성의 땅 ③아직은 미완의 대기 ④19세기, 20세기, 21세기가 공존하는 땅.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들과 인도를 전공으로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인도 인구 연령분포.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도 인구 연령분포. 그래픽=송정근 기자

낙관론의 주요 근거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다. 인도 인구는 14억1,700만 명으로 이미 중국(14억1,175만 명)을 추월한 것으로 추산된다. 2050년에는 인구가 16억6,800만 명에 달해,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는 중국(13억1,700만 명)을 멀치감치 따돌리게 된다.

'많다'는 것뿐 아니라 '젊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인도경제모니터링센터(CMIE)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전체의 67.3%다. 25세 이하 인구만 47%로 절반에 가깝다.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젊은 노동력'을 가졌다. 경제활동인구 규모 증가는 내수시장 확대와 같은 의미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젊은 생산가능인구가 많아지고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인도 소비시장에 큰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낙관론②: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지난 7일 인도 뭄바이의 한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지난 7일 인도 뭄바이의 한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뭄바이=AP 연합뉴스

한국보다 뜨겁다는 교육열, 정보통신(IT) 분야의 풍부한 인재풀도 인도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손꼽힌다. 김문영 전 코트라 서남아본부장은 "카스트 신분제 영향이 큰 인도에서 고등교육은 온 가족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문제"라며 "2011년 출범해 세계 최대 온라인 교육플랫폼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바이주스(Byju's)가 대표 사례"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인도에게 유리하게 재편되는 것도 희망적 요소다. 미국과의 갈등을 거듭하며 코로나 봉쇄 조치를 계속해 온 중국은 더 이상 안정적인 생산기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애플, TSMC, 인텔 등 초대형 기업들이 앞다퉈 인도에 생산시설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현재 세계 5위인 인도의 GDP가 2029년 일본(3위)과 독일(4위)을 추월해 3위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도 인도에 사활을 거는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지 생산물량을 늘리거나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400억루피(약 6,08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관련 연구개발(R&D) 기능과 관련 인프라를 확장할 계획을 밝혔다.

비관론①: 중국보다 더한 텃세

인도 경제의 잠재력과 위험 요인.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도 경제의 잠재력과 위험 요인. 그래픽=강준구 기자

하지만 인도가 이런 잠재력을 가지고도 아직까지 저개발국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남아있는 전근대 잔재가 성장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정부가 각종 규제를 통해 시장에 관여하는 '국가 주도 개입경제'가 외국기업들의 진출을 머뭇거리게 한다. 2014년 출범 이후 모디 정부는 자국 기업 육성 차원에서 관세를 꾸준히 올리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했다. 반덤핑 관세 또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통해 수입 규모를 제한하거나,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검증 강화를 통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기도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인도의 무역구제조치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217건(반덤핑 202건·상계 13건·세이프가드 2건)에 달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1위 미국) 많다.

또한 인도 정부는 국내 기업을 위해 외국기업에 대한 비공식 세무조사도 서슴지 않는다. 인도에서 15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과세당국은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해 어마어마한 과징금을 부과한다"며 "조사 대상 기준도 없고 공무원 재량권이 커서 종업원 5명 미만 소규모 업체까지 조사를 받는다"고 전했다.

외국 기업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뿌리깊은 반감도 걸림돌이다. 강성용 서울대 남아시아센터장은 "인도에는 외국 사람들이 돈을 벌어서 유출해서는 안 된다는 식민지적 반감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 대기업을 중심으로만 제한적으로 인도에 진출해 있다. 가장 성공적 인도 진출의 사례로 꼽히는 현대차, 삼성전자 등은 인도에 생산시설을 갖춰 수출을 통해 인도에 '외화를 벌어주는 곳'이다.

비관론②: 극도로 열악한 유무형 인프라

인도가 코로나19 확진자 감소 추이를 감안해 봉쇄 조치를 완화한 가운데 14일 뉴델리 북부 재래시장인 사다르 바자르가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인도가 코로나19 확진자 감소 추이를 감안해 봉쇄 조치를 완화한 가운데 14일 뉴델리 북부 재래시장인 사다르 바자르가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지역에 따라 기업 환경이 천차만별인 인도 특유의 지역성도 현지 지출을 고민하게 하는 걸림돌 중 하나다. 최근까지만 해도 인도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커서 지역마다 조세제도가 제각각이었다. 주마다 각종 세율이 다르게 책정돼 외국 기업으로선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 현지 관계자는 "2017년부터 500개의 세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조세 제도 개편이 있기는 했지만 복잡한 것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적극 유치하고 있지만 부지 매입, 생산시설 건설, 판매와 유통에 이르는 모든 절차가 복잡한 것으로도 악명 높다. 중앙정부 통제력이 강해 지방 곳곳까지 신속한 공장 유치 정책을 실시하는 중국과 정반대다. 법제도뿐만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 216개에 달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또한 심각하다. 빈곤과 빈부격차, 열악한 인프라도 성장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 약점이다.

이런 인프라 부재는 인도공과대학(IIT)를 졸업한 최고급 인재들이 인도에 남지 않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다수가 인도계인 것은 해외로의 인적자원 유출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부풀려진 '대국론'... 그래도 기회는 있다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업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업 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런 치명적인 한계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인도부상론'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의 프레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의 빠른 경제 성장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으나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는 의미다. 강성용 센터장은 "인도가 미래에 더 큰 강대국이 되리라는 레토릭(수사)은 결국 인도의 민주주의가 중국의 공산주의를 이길 것이라는 미국 중심의 가치체계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도와 중국을 비교할 때 양국은 역사,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는 만큼, 중국 대체재로서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인도 진출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도 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간접투자 방식의 접근이나 인프라, 부동산 분야에 투자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주장도 있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델리사무소장은 "뉴델리, 뭄바이 등의 대도시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옛날 인도 모습 그대로"라며 "장기적으로 볼 때 인도만큼 큰 건설 시장은 없는 만큼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플랜트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한류 확산을 등에 업고 뷰티와 식품 분야에서 국내 기업 진출에 물꼬가 트이는 분위기도 조심스럽게 감지된다. 롯데제과는 지난달 인도에 700억 원을 투자해 빙과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김응기 전 신남방정책특위 민간자문위원은 "인도 동북부 지역은 인도 내에서 한류가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지역"이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라면을 비롯한 한국 식문화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최근엔 K팝 콘텐츠 수출계약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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