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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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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중산층은 우리 소설가들의 주요한 탐구 대상이었다. 중산층 특유의 욕망, 속물근성 등 복잡 미묘한 내면은 문학작품들을 통해 구체화됐다. 빠른 경제성장 덕택에 우리나라에서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산층이 두꺼워진 역사적 배경도 작가들이 중산층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4인 가족, 아파트, 자가용’은 한국인들의 로망이었다. 실제였건 허위의식에서였건 고도성장기였던 1980년대에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10명 중 7, 8명이라는 통계도 찾아볼 수 있다. 중산층은 대체로 ‘안정 희구적이다, 더 높은 계급으로의 상승 욕망이 강하다, 하층 계급의 중산층 진입을 막는 데 진력한다. 따라서 차별적 소비 취향을 추구한다’ 같은 특징도 공유한다.
여러 직업과 세대, 계층을 다루었지만 특히 중산층의 심리와 세태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그려낸 작가로 6년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고(故) 정미경(1960~2017)을 꼽을 수 있다. 가령 정미경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테라피스트로부터 마사지를 받는다. 부르디외를 빌려 표현하면 중산층의 계급 구별짓기 전략이다. 이들은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이라면 단지 이물감 정도가 아니라 ‘뼛속 깊은 데서 나오는 다름’을 느낀다.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만큼 중산층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대표적인 중산층 직종인 금융업에 종사하던 또 다른 소설 속 인물은 갑자기 닥친 금융위기로 자리에서 밀려날 상황에 처한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의 하찮음에 대해 무감각해진다'거나 ‘뇌세포가 마르고 시들어갈’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무력해진다. 어느 문학 평론가의 말처럼 중산층이 주인공인 문학작품을 지배하는 정조는 ‘계층 하락에 대한 공포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략 2000년대 전후로 쓰여진 정미경 소설에서 뭉뚱그려져 중산층으로 묘사됐던 이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증가했다(2013~2021년)는 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가 화제가 됐다. 보고서의 분석이 맞다면, 중간 일자리 감소로 중산층이 붕괴되는 현상에 대한 세계적인 우려는 다른 나라 일인 셈이다. 보고서에 나타난 중산층 범위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사실 중산층이 ‘늘어났느냐, 줄어들었느냐’에 대한 관심은 더 이상 현실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효성이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다. 사회학자 구해근이 통찰했듯 과거에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엇비슷하던 중산층이 ‘특권 중산층’과 그렇지 않은 중산층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에 눈길이 더 간다. 중산층 내부도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갈라지는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했던 과거의 중산층과 달리 이제는 소비 수준, 여가 생활, 자녀 교육에서 특권을 차지하는 중산층과 그렇지 못하는 일반 중산층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고 심연은 깊어지고 있다. 특권적인 중산층을 선망하는 일반 중산층들의 진짜 문제는 상실감과 더 깊어진 불안감이라는 얘기다.
높은 난방비 고지서에 정부가 먼저 취약계층 지원책을 내놨다가 그 정도로는 민심을 돌릴 수 없다며 정치권은 때아닌 중산층 논쟁으로 며칠간 소란스러웠다. 중산층까지 지원을 검토하라는 대통령 발언까지 나오면서, 결국 차상위 계층이 중산층이냐 아니냐, 중산층이 서민이냐 아니냐 등 여러 말들이 오갔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말을 넓은 취지로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허무하게 논쟁은 마무리됐지만 아무래도 가짜 논쟁이 아니었나 싶다. 지위 상승은커녕 더 이상 지위를 지키는 일이 버겁다고 느끼는 '지금' 중산층의 불안감과 막막함은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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