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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사태가 불러올 파장

입력
2023.01.27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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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전당대회 주인공은 尹대통령
나경원 다음 수순은 ‘안철수 악마화?’
정권교체 진영 분열과 배제의 길로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경선 전당대회 출마 여부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경선 전당대회 출마 여부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기존 정치문법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당 안팎의 자원이 총결집해 흥미진진한 축제의 경쟁무대가 돼야 할 집권당 전당대회가 초반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독무대로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대통령 언질에 전대 규칙이 바뀌는가 하면, 출마 의지를 밝힌 중량급 친윤 후보가 불출마로 돌아서고, 급기야 ‘당심’에서 1위를 달리던 나경원 전 의원이 차마 보기 낯뜨거울 지경의 집단린치를 받아 당대표 도전을 포기했다. ‘용산’의 뜻에 맞지 않는 나 전 의원을 무릎 꿇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건 특이한 현상이다. 수차례나 당무 개입을 하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경선 개입을 적나라하게 관전하는 것이야말로 민망하다.

우선 ‘공정과 상식’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이런 졸렬한 행동을 하는데 누구도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법치국가의 여당 대표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누구든 출마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대통령과 ‘윤핵관’의 구상에 맞든 아니든 법질서에 따라 공정하게 당내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선거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가. 무리한 도전이라면 그 판단도 당원들이 해야 한다.

‘이준석 사태’가 봉합된 지 4개월 만에 등장한 나경원 조리돌림으로 집권당의 위축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도를 넘는 코드 맞추기는 정당 고유의 역동성과 민의전달 기능을 마비시켜 궁극적으로 진영 전체에 대한 국민신뢰를 갉아먹는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을 떠올리고 있다. 검사들 사이에 철저한 상명하복이 관철된다는 말인데, 윤 대통령이 이런 위계질서를 ‘용산-여의도 동일체’로 넓혔다는 촌평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당은 여의도출장소나 거수기 역할만 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집권여당 대표를 뽑는 선거를 앞두고 국가 현안이나 미래비전을 둘러싼 토론은 눈에 띄지 않는다. 보수의 재편성이나 총선을 겨냥한 중도 확장, 태극기부대와의 절연 같은 의미 있는 논쟁은 설 자리가 없어진 탓이다.

현재 여권은 대선승리로 정권은 잡았지만 그 넘치는 권력을 누릴 핵심코어 그룹이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윤핵관들도 과거 한나라당부터 이어진 보수정당의 메인스트림이라 보기 어렵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여당 신주류를 확대 구성하고 내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윤석열 색깔’을 대거 채워 넣어야 국정주도세력의 실체가 완결되는 구조다.

그런데 그 길목에서 이른바 정권교체를 이룬 범보수진영의 파이를 오히려 해체시키는 쪽으로, 뺄셈 정치를 미숙하게 노출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몰락한 정통보수, 친이명박 세력, 검찰출신을 비롯한 윤석열 직계그룹, 이준석이 대표하는 젊은 청년보수 등 다양하게 확대된 세력별 에너지가 국정 2년차 성과로 분출하긴커녕 벌써부터 분열과 배제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닌지 의문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과거 YS의 3당 합당 직후 넘쳐나던 정치자원이 이후 순차적 숙청과 해체의 과정을 겪던 것과도 비슷하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반윤’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기 위한 ‘당원 100%’ 룰 개정을 비롯한 일련의 과정은 내년 총선 때까지 차곡차곡 기억에 쌓여 여권에 대한 인상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단순명쾌한 상명하복의 리더십 말고 구존동이(求存同異·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공동이익 추구)의 정치력을 키우지 않는 한 여권은 차차 구심력을 잃고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다. 당대표 선거는 결과가 어떻든 전적으로 후보 정리를 주도한 용산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친윤’ 김기현과 양강구도를 형성한 ‘비윤’ 안철수에 대한 악마화가 다음 수순일 것이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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