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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뒤 숨은 분노와 저항… 브론테 남매의 삶은 록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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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제인 에어'의 샬럿,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아그네스 그레이'의 앤. 세 명의 브론테 자매가 남긴 소설은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 북부 황량한 하워스 지역에서 가난한 목사의 딸로 자라난 이들은 가난과 여성이라는 편견을 뜨거운 창작열로 이겨냈다.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브론테 집안의 남자 형제인 브랜웰을 포함해 4명의 브론테 남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이다.
작품은 첫째인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를 화자로 삼아 극을 전개한다.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의 작가도, 필명 커러 벨도 아닌, 목사의 아내이자 한 아이를 임신한 아서 니콜스 부인으로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선택에 의문을 둔 이들에게 샬럿은 말한다. "19세기 초 하워스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작품은 브론테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샬럿이 형제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가정을 선택하고 창작에서 멀어진 상황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론테 자매에게는 샬럿 위로 두 명의 언니가 있었으나 어린 나이에 죽었다. 어머니는 언니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샬럿은 어린 시절부터 맏이이자 엄마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는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아버지가 아들 브랜웰에게만 장난감 병정을 선물한 일화부터, 브론테 남매가 포장지나 옷 등을 이용해 그들만의 작은 잡지를 만들었던 일, 샬럿과 앤이 교사와 학생으로 보낸 학교생활, 그리고 브랜웰이 가정교사를 하던 집에서 유부녀인 리디아와 사랑에 빠지며 괴로워하는 과정, 샬럿이 소설가로 성공한 후 동생들을 하나둘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일 등 브론테 남매에게 일어난 일화를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보여준다.
일화에서는 당시 여성들이 얼마나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살아왔는지가 잘 드러난다. 아버지는 딸들의 교육에는 신경 쓰지 않지만 아들 브랜웰을 위해서는 가난한 형편에도 화실을 내주고, 샬럿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지만 브랜웰처럼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못하고 가족에게도 숨긴다. 남녀 차별은 작가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여성작가의 글에 대한 편견 때문에 브론테 자매는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이라는 필명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해야 했다.
에밀리의 글은 평단의 혹평을 받으며 예민한 에밀리의 병을 악화시키고, 앤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브랜웰은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샬럿의 '제인 에어'는 발표와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샬럿마저도 남매들과 세상에 맞섰던 창작의 열정을 거두고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려 한다. 제목 '웨이스티드(Wasted)'는 '헛된'이라는 의미로, 브론테 자매들이 "단어를 모아 책을 만들었던 창작의 과정"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샬럿에게 성공하지 않아도 그것이 헛된 삶은 아니라고 말한다.
작품은 브론테 남매의 일화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브론테 남매가 부딪혀 왔던 열정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우리 세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진정한 이 작품의 가치는 음악과 형식에 있다. 작품은 브론테 자매의 일화를 록 음악 중심의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낸다. 넘버 '이 비참한 족쇄가'는 생계를 위해 일터로 뛰어든 브론테 남매가 겪는 황당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버텨야 한다는 울분을 하드록 스타일로 들려준다. 또한 앤이 결혼 상대를 구하길 바라는 '결혼할 사람이 없어요'는 컨트리로, '브랜웰을 위한 송가'는 가스펠로, 또 런던에서 사교계 사람들을 만나고 오페라를 보는 '런던-오페라'는 오페라 스타일로 극을 전개한다. 하드록, 포크록 등 다양한 록 음악을 중심으로 19세기 초 가난한 예술가가 세상과 부딪히며 느끼는 분노를 담아내면서도 컨트리나 가스펠, 오페라 형식을 극 내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해 32곡의 노래로 브론테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노래의 가사 중 일부는 브론테 자매의 작품에서 가져와 그들의 고민을 브론테의 언어로 들려준다. 일대기 중심의 다큐멘터리적인 드라마를 다양한 록 음악으로 보여주면서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 콘서트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노래 한 곡 한 곡에 심취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19세기 초 가난한 여성 예술가로 황량한 마을에서 살아가야 했던 브론테 자매들의 아픔이 전해진다.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신선한 형식과 다양한 스타일의 완성도 높인 음악으로 그동안 등장한 수많은 아티스트 소재의 뮤지컬과는 차별화된 영역을 차지한다. 2월 2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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