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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범죄 의혹의 진짜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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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미스터리는 이야기 소재라도 되지만 권력형 범죄 의혹은 공권력에 대한 냉소와 패배의식, 신뢰의 근간을 허무는 폐해로 이어지곤 한다. 2차 대전 전후 미군정 치하의 일본에서 벌어진, 여러 권력형 범죄 의혹의 유산이 일본의 정치 수준 나아가 침략전쟁에 대한 희박한 책임의식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의심이 그런 맥락에 닿아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전후 약 7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일본을 통치했다. GHQ의 최우선 통치 이념은 군국주의 해체나 미국식 민주-자유주의의 정착 등 명분보다 ‘레드 퍼지(Red Purge)', 즉 빨갱이 숙청이었다. 악질 전범이나 흉악한 살인자여도 반공과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면 면죄부를 부여했다. ‘마루타’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원 누구도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은 게 상징적인 예였다.
1948년 1월 26일 도쿄 도시마구 제국은행 시나마치 지점에서 일어난 독극물 집단 살인강도 사건도 ‘권력형 범죄 미스터리’의 예 중 하나였다. 방역반 완장을 차고 후생성 의사 명함을 소지한 범인이 오후 3시 무렵 지점에 찾아와 “집단 이질 방역이 필요하다”며 직원 등 16명에게 독극물을 먹인 뒤 현금 16만 엔과 수표 등을 훔쳐 도주한 사건. 12명을 숨지게 한 독극물은 청산가리와 달리 약효가 더디게 나타나도록, 다시 말해 피해자들이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발적으로 약을 섭취할 수 있도록 개량된 청산가리 계열 독극물로, 731부대와 관련된 육군 연구소가 개발한 약물이었다.
하지만 GHQ는 군 관계자 등에 대한 수사를 일절 금지했고, 그해 8월 한 남성이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기소 및 판결의 근거가 된 자백은 고문으로 조작된 사실이 확인됐고, 특히 피의자는 당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역대 정부는 백방의 구명운동과 재조사 청원을 외면했고, 동시에 사형 집행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그 남성은 1987년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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